채워야 사는 바람(누락)
이제는 떠나야할 때이다.
앉았다 일어서면
빈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발 한발 내딛으며
바람 부는 곳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모든 것을 다 막아놓고
힘껏 달리라고 한다.
달릴 수 있는 곳은 바람이 부는 곳이다.
채워도 채워도
가슴이 허전한 곳
버려도 버려도 또 다시 가득 채워지는 곳
무엇 때문에 우주를 바라보고
무엇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 때문에 삶을 바라보며
바람 부는 데로 달려야만 할까?
발아래 소나무가 있고
발아래 정자가 있고
발아래 인천대교가 있고
발아래 해가지는 아름다운 석양이 있어
저 먼 곳까지 달려가야만 하는 바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
바람을 가슴으로 안아야한다는 것이다.
바위처럼 든든한 청량산 정상에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바람을 맞다보면
등 뒤로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분다.
얼마나 시원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마를 식혀줄 바람만 불어와준다면
손을 내려놓고
가슴을 내려놓고
영혼까지 내려놓고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멈춰버린 바람조차
흔들어 깨울 수 있다.
흔들린다는 것은 채움이다.
새싹을 흔들고
나무를 흔들고
생명을 흔들 때 다가오는 우주의 생명은
나의 분신이요
나의 영혼이다.
한없이 달릴 수 있는 바다가 있어 즐겁고
한없이 달릴 수 있는 텅 빈 우주가 있어 즐거운 것처럼
채우고 또 채우고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때까지 바람을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우리가 달려온 시간과 공간으로
손뼉 치며 즐거워할 시간만 있다면
온 몸을 던져서라도
바람을 채우고
소리를 채우고
희망을 채워나가야 한다.
어떤 때는 정상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가
지루하기도 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손을 잡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길 잃은 바람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다.
버려도
또 다시 채워지는 바람처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꿈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살리는
공존하는 선악처럼
서로의 경계에 서서
줄다리기를 할 수 있어야한다.
2010년 5월 5일 수요일
청량산 정상 용학유정에서 채워야 사는 바람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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