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쪼갤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한계는 벽에 부딪히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것이 정신세계이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단위가 양자(퀀텀)이지만
정신세계는 빛의 향연 속에서 빛을 잘게 쪼개내어 극의 한계를 벗어난다.
고요의 극점에 안착해도 고요의 극점조차도 쪼개고 또 쪼개어
고요의 극점 안에서 또 다른 고요의 극점을 찾아내듯이
양자를 잘게 쪼개내어 빛으로 모았다가 우주를 뒤덮게 만들기도 하고
종교로
철학으로
선행으로
죄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은 화살이 과녁(貫革)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한다.
정신세계는 곧 마음의 세계로 통하기에
종교에 얽매이면 종교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고
철학에 얽매이면 철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고
과학에 얽매이면 과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고
선행이나 죄에 얽매이면 선행과 죄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마음은 한곳으로 모이기도 하지만
마음은 여러 곳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이합집산의 달인이 마음이다.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도
보기에 나빠 보이는 것도
다 마음의 작용에 의해
선과 악의 공존으로 존재한다.
선을 악이라 느낀다면 악이 되고
악을 선이라 느낀다면 선이 되듯이
공존하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악의 기준이 달리 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주와 자연은 늘 중심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의 잣대나 기준에 움직여주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기에
흔든다고 흔들릴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들릴 수 없는 본연의 모습
이것 하나만 마음에 간직한다면
더는 원할 것도 놓을 것도 없다.
진심으로 짓는 자연이 있기에
우리는 마음 놓고 앞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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