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참 나와 세상에서의 나
나를 나라고 부르는 순간
내가 아니다.
흩어졌다
모아지면
새로운 나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를 나라고 부른다하여
내가 아니기에
너와 나는 언제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는
가장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지금의 나와 세상에서의 나를 혼동하여
나라고 부르거나
고요의 극점 안에 서 있는 나를
참 나라고 부르거나
종교의 안팎에 서 있는 나를
나라고 부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끝이 없는 데
시작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찾아야할 것인가?
세상에서 보이는 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나를 찾거나
과거․현재․미래와 함께하고 있는
우주 속에 녹아있는 나를 찾아야
참된 나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둘이 될 수 없는 수평선처럼
하나로 연결된 우주의 존재이자
생명체로 태어났기에
우리들은 지금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나라고 부르는 것도 실수요
너를 너라고 부르는 것도 실수요
나와 너를 하나라고 부르는 것도 실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라고 불러야하겠는가?
생명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기에
산과 바다가 되기도 하고
땅과 하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숱한 세월을 등에 지며 달려온
우리들이기에
우주의 미세한 먼지가 되었다가
지구의 미세한 먼지가 되었다가
한 지붕 한 가족처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다.
호흡을 하면 생명이 되고
호흡을 멈추면 죽음이 되듯이
나를 나라고 부르는 순간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까닭에
숨 한번 크게 쉬며
나를 나라고 부르지 못하는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저 눈 한번 감았다 떠보는 것으로
나의 존재를 느끼고
그저 눈 한번 떴다가 감는 것으로
너의 존재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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