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차이에 감응할 줄 아는 수련자여야만
처음에는 홍태수 저 『단의 실상』이라는 책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원리를 생각하거나 의문이 드는 부분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단의 실상』이 유일했기에
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때까지 보았다.
원리는 미세한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시명 단사님께 지도를 받아가며
실무와 이론을 동시에 접했기에
지금의 인체전자석이라는 이론이 완성되었는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때 그 순간을 잡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이론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두 분(스승님) 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기에
그런 엄청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아당 호흡강좌』가 이론이라면
지도자와의 만남은 실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싶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자와 수련자는 교감인 것 같다.
서로 간에 간절함이 통해야만
어떤 목적을 이룰 수 있듯이
전해주고자하는 간절함과
전달받고자하는 간절함이 맞아 떨어져야만
제대로 된 전수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시기도 중요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놓쳤더라면
이러한 순간은 오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흡수련에 있어 미세한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수련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본다.
일반인하고 똑같이 감 떨어지기만 바란다면
결코 얻을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미세한 반응에
아니 미미한 반응에도 감응할 줄 알아야만
수련자의 자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씨앗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어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미미하다거나 미세하다고 무시해버린다면
영영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비법이라면 비법이지만
미세한 차이에 감응할 줄 아는 수련자여야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8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6 -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0) | 2018.04.08 |
---|---|
기세수와 신장 강화운동 (0) | 2018.04.08 |
그 자체가 거대한 전자석이다 (0) | 2018.04.08 |
한곳을 향한 집중력 (0) | 2018.04.07 |
추사 김정희 (0) | 2018.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