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미세한 차이에 감응할 줄 아는 수련자여야만

청아당 2018. 4. 8. 08:00

미세한 차이에 감응할 줄 아는 수련자여야만

 

처음에는 홍태수 저 단의 실상이라는 책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원리를 생각하거나 의문이 드는 부분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단의 실상이 유일했기에

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때까지 보았다.

 

원리는 미세한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시명 단사님께 지도를 받아가며

실무와 이론을 동시에 접했기에

지금의 인체전자석이라는 이론이 완성되었는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때 그 순간을 잡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이론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두 분(스승님) 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기에

그런 엄청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아당 호흡강좌이론이라면

지도자와의 만남은 실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싶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자와 수련자는 교감인 것 같다.

 

서로 간에 간절함이 통해야만

어떤 목적을 이룰 수 있듯이

전해주고자하는 간절함과

전달받고자하는 간절함이 맞아 떨어져야만

제대로 된 전수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시기도 중요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놓쳤더라면

이러한 순간은 오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흡수련에 있어 미세한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수련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본다.

 

일반인하고 똑같이 감 떨어지기만 바란다면

결코 얻을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미세한 반응에

아니 미미한 반응에도 감응할 줄 알아야만

수련자의 자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씨앗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어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미미하다거나 미세하다고 무시해버린다면

영영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비법이라면 비법이지만

미세한 차이에 감응할 줄 아는 수련자여야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848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