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은
미국의 휴일로 11월 넷째 목요일에,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한국은 11월 셋째 일요일(주일)에 기념한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수확과 신의 은총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미국의 국경일이다.
다음 백과사전에 의하면
청교도들에 의해 치러진 플리머스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 가을 플리머스의 총독 윌리엄 브래드퍼드가 수확의 풍요함을 감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축제를 3일 동안 열고 근처에 사는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초기의 개척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추수감사절은
수확량이 풍족해서 치러진 의식이 아니라
초기에 미국으로 넘어온 청교도들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한겨울을 지내야하는 청교도들의 삶은
말 그대로 처참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전염병 때문에
절반이 죽어나갔으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작은 수확이나마 고마움에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되었다.
하늘을 감동시킬만한 믿음이 없고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처절한 추수감사절이었다.
그래도 조그마한 옥수수 수확량이었지만
하나님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시작된 기념일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이었다.
지금은 하나의 축제로 변형되었지만
초기에만 해도
오직 신께 감사함을 전하기 위한 기념일이었다.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자료출처 :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의 초기 선교에서 전해진 추수감사절은 1921년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협의에 의해 매년 11월 셋 째 주일이 기준이 되어 교회 절기로 지키고 있다.
청교도(淸敎徒, Puritan)는 로마카톨릭교회의 의식으로부터 영국(England)교회의 순결(purify)을 추구한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의 영국 개혁주의 프로테스탄트들이다. 당시 영국교회는 오직 부분적인 개혁을 주장하고 있었다.[1] 또한 원형적이고 전통적인 복음주의 [2]를 지향했던 기독교인들을 통칭한다. 이들은 개신교 교인들로서 전통적 복음주의 안에서 루터주의 계열과 칼뱅주의 계열과 잉글랜드 성공회에 소속된 이들과 전통복음주의를 추구했지만, 계열을 추구하지 않던 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전통 복음주의자들을 통칭해 일컫는 말이며[3] , 이런 신앙에 있던 사람들을 청교도라고 한다.[4]청교도들은 영국 종교 개혁이 불완전한 개혁이었다고 평가하여, 영국 성공회의 정부 중심의 성향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잔재를 철폐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도덕적인 순수성을 추구하여 낭비와 사치를 배격하고, 근면을 강조하였으므로 영국의 중산층을 형성하였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인위적 권위와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에 철저하고자 한 전통 복음주의인 성서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영국교회가 핍박을 하자 미국으로 건너와서 청교도의 부흥을 이루었다.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은 전통적인 북아메리카의 휴일로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에,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기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1월 셋째 일요일(주일)에 기념한다.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한국의 추석과 같이 가족들끼리 모여 파티를 열어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또한 대부분의 학교와 직장에서는 여유롭게 휴일을 즐길 수 있게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휴무로 하여 총 4일 동안 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추수감사절은 쇼핑시즌으로도 유명한데 검은 금요일이라고 불리는 금요일에는 모든 상점들이 세일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러 간다.
수확을 한 후 그리고 특정한 때 감사기도나 특별한 감사의식을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보편적인 것이다.[1] 북미에서의 추수감사절은 청교도 혁명을 하던 시기의 잉글랜드 전통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뉴잉글랜드의 추수는 오늘 날 경축하는 11월말 훨씬 이전에 이뤄졌지만 이것은 또한 추수 잔치의 양상을 가지기도 한다.
잉글랜드 전통에서 감사를 드리는 시기와 특별 감사 예배는 헨리 8세의 통치기에 일어난 잉글랜드 개혁기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력에 있는 많은 종교적 경축일에 대응하여 중요해졌다. 1536년 이전에는 95개의 교회 경축일과 52개의 일요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갈 필요가 있을 때나 일을 하기 전에 종종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다. 1536년 개혁을 통해 교회 경축일을 27개로 줄였지만 당시로서는 급진적 개혁파였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포함해서 모든 교회경축일을 완전히 없애고자 했다. 그런 경축일들은 청교도들이 섭리 행위로 간주한 사건에 대응하여 소위 금식일이나 감사절로 대체되었다. 예상치 못한 재난 또는 높은 곳에서 온 심판의 위협은 금식일을 요구하게 했다.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는 특별한 축복은 감사절을 요구하게 했다. 예를 들어, 금식일은 1611년의 가뭄과 1613년의 홍수, 1604년과 1622년의 전염병으로 인해 요청된 것이었다. 감사절은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에 대한 승리에 따라서, 그리고 1705년 앤 여왕의 해방에 이어 요청된 것이었다. 특이한 명절로서 감사절은 1606년에 전년에 있었던 화약음모사건의 실패에 이어 시작되었으며, 가이 포크스의 밤으로 발전했다.
캐나다
이 부분의 본문은 추수감사절 (캐나다)입니다.
캐나다에서 설득력 있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지만 캐나다 추수감사절은 탐험가 마틴 프로비셔가 등장했던 15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으로 통하는 북로를 발견하려 했던 프로비셔는 추수감사절을 열었다. 이것은 추수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잉글랜드에서 긴 여행을 하는 동안 폭풍과 빙산의 위험으로부터 생존한 것에 대한 감사였다. 그의 북극으로 세 번째 여행이자 최후의 여행에서, 프로비셔는 배핀 섬(오늘 날의 누나부트 준주)에 있는 프로비셔 만에서 신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로버트 월폴 목사가 개최한 예배를 통해 종파를 축복하는 정례화된 의식을 개최하였다.
추수감사절의 대표 음식인 칠면조 구이
또한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원은 종종 17세기 초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과 함께 뉴프랑스에 온 프랑스 개척민들이 성공적인 수확을 경축한 행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 지역의 프랑스 개척민들은 수확기 말에 전형적인 연회를 열었으며, 그 지역의 인디언들과 식량을 공유하며 겨울 시즌 내내 지속하였다.
뉴잉글랜드에서 캐나다에 정착민들이 도착하자, 늦은 가을 추수감사절 경축행사는 보편화되었다. 아일랜드계, 스콧틀랜드계, 독일계처럼 캐나다로 새로온 이민자들도 그들 자신들의 전통을 추수감사절 경축행사에 더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특징들(칠면조와 같은)은 미국 왕당파들이 미국 독립 전쟁 기간에 미국으로부터 도망을 와서 정착했을 때 추가된 풍습들이다.
추수감사절은 캐나다 대부분의 주에서 국경일이 되었으며,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주의 애틀란틱 지방,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 뉴브런즈윅 주, 노바스코샤 주는 예외적이다.
미국
이 부분의 본문은 추수감사절 (미국)입니다.
플리머스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 By Jennie A. Brownscombe (1914)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 식민지로 이주한 필그림 파더스의 첫 수확을 기념하는 행사이고 보편적으로 널리 행해지는 일반적인 행사이다. 필그림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한 1620년에서 1621년 초의 겨울은 매우 어렵고, 많은 사망자를 냈으며, 주위에 거주하고 있던 인디언 부족 왐파노아그 족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듬 해인 1621년 가을, 특히 수확량이 많았기 때문에, 필그림 파더스는 왐파노아그 족을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먹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국인 이주민도, 왐파노아그 부족도 가을 수확을 축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해의 사건이 특별한 추수감사 축제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다. 플리머스 식민지에서 처음 경축한 1623년 추수감사절은 식사보다는 오히려 교회에서 예배를 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다.
유래
처음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왔을 때 큰 수확을 거둔 것에 대한 감사에서 유래한다. 잉글랜드의 당시 영국국교회를 반대하는 전통적 복음주의자인 개신교 신자들을 뜻하는 청교도들은 영국국교회와의 갈등으로 미국의 플리머스로 이주하여 인디언들로부터 배운 경작법으로 봄에 옥수수를 재배하여 가을에는 풍년을 거두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들은 새로운 터전에 정착할 기반을 잡을 수 있게 되는데, 큰 수확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표하고자 1621년에 3일동안 추수를 감사하는 축제를 벌인다. 이때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어 굶어죽지 않도록 배려한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추수한 곡식, 과일과 야생 칠면조와 사슴을 잡아 축제를 했는데 이것이 미국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서중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에 의하면 청교도들은 큰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청교도들은 흉년과 식량난으로 고생했으며 미국에 올 때 배를 빌리느라 진 빚이 이자가 불어나서 돈에 쪼들리는 경제난에도 시달렸다. 청교도들은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이었기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고생했으며, 완두콩 농사와 보리 농사도 망쳤다. 옥수수도 이십 에이커의 밭에서 난 것이 전부였다. 더구나 전염병까지 유행해서 건강도 해쳤으며, 날씨도 좋지 않았다. 잉글랜드에서 온 이민인 청교도들로부터 자신들의 전통적인 종교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인디언들의 항쟁과도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청교도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보아줄 것으로 믿고 감사를 드린 일에서 유래한 명절이 추수감사절이다.
명절
그 후 1623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명절로 선포하여 추수감사절은 매사추세츠 주와 코네티컷주의 연례적인 명절이 되었으며,이 관습은 서서히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1789년에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지정하게 되는데, 3대 제퍼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은 잉글랜드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국경일에서 제외시켜 이후엔 몇 개의 주에서만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다.
하지만 1863년 10월 3일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중에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을 연례 국경일로 선포하고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였다. 그 후 1941년 12월 26일 프랭클린.D.루스벨트 대통령이 11월의 4번째 목요일로 하기로 정하였다.
이는 Godey's Lady's Book의 저자인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가 링컨대통령에게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독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받아들여져서이다.
이후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 중 하나로 매년 지켜지고 있다.
다음백과사전에 의하면
1621년 가을 플리머스의 총독 윌리엄 브래드퍼드가 수확의 풍요함을 감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축제를 3일 동안 열고 근처에 사는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초기의 개척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엽까지 추수감사절은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하나의 관례적인 축제가 되었고,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국경일로 선포했다.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의 축제라고도 하는 이 행사는 미국의 고유한 풍습으로 정착되었으며, 1941년 법령이 바뀌어 11월의 4번째 목요일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기념했다.
캐나다는 1879년 11월에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하고 지금은 매년 10월의 2번째 월요일에 축제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