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혜민 스님

청아당 2017. 10. 28. 18:05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혜민 스님 

처음에도 완벽한 것은 없다
나중에도 완벽한 것은 없다

 우주와 만나는 시점이 깨달음이고 
 끝은 

시작도 끝도 없다

처음부터 불완전한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나중에도 불완전한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깨달음을 얻든 
깨달음을 얻지 못하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깨달음보다  중요한 것이 
삶이기에 그렇다

삶보다 깨달음이  중요해지려면 
깨달음이 삶보다  중요해져야 한다

삶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

삶이 있기에 종교가 있고 
삶이 있기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종교가 있기에 삶이 있고 
깨달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도 
삶이 없는 세계는 
  우주와도 같기에 
  자체를 빼놓고서는 
 한 발짝도 벗어날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도 삶(인간)이 있어야만 존재하고

깨달음도 삶(인간)이 있어야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삶이 없는 세계는

종교도

깨달음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묘한 일인가?

 

종교가 태초 이전에 존재했건

깨달음이 태초 이전에 존재했건

그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위한 종교여야하고

인간을 위한 깨달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깨달음 또한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저 홀로 잘났다고 따로 놀지 않고

인간과 함께 어울려가고 있지 않은가?

 

성자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유교는 공자가 나서서 인간을 교화하고 있고

불교는 석가가 나서서 인간을 교화하고 있고

기독교는 예수가 나서서 인간을 교화하고 있지 않은가?

 

다들 인간을 빼놓고서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기독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선한 행위나 경험을 통해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하나면
하나님의 영광을 입을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이 얼마나 간결하고 명료한 논리인가?

부처가 되기 위해 평생을

고행이나
깨달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시간보다
위의 논리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대해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용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깨달음보다 
삶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깨달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깨닫는 것이기에 
 하나하나를 짚어보면   있는 부분이다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평이한 문체로 
마치 수채화를 그려 나가듯이 
풀어나가고 있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다

세상에 대한 고뇌도 많이 해보았고 
공부도 많이 해보았고 
산전수전도 많이 겪어 보았기에 
이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도 갖추어져 있는  같다

무엇보다 
인격과 성품이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글이 탄생할  있었으리라고 본다


아래의 내용은 본성편에서 발췌한 글의 일부분이다

본성편 
고요 속에 깨어 있는 마음 

우리의 본성은 하늘과 같아서 
생각이란 구름감정이란 천둥기억이라는 노을이 지지만 
하늘의 본성은 그것들을 허락하고 변화함을 
다만 지켜볼 뿐입니다
생각감정기억의 날씨는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하늘의 마음 공간은 변함없이 여여합니다


틱낫한 스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걷는 것과 먹는 것에서   있듯바로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온전히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지금 무언가를 하면서도 마음이 자기 생각 속에 빠져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지금 현재에 와서 깨어 있는 것이다왜냐면 여기 지금 현재가 바로 수행자들이 찾던 마음의 고향이자 귀의처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깨달음이 하나 올라오는데 바로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운 침묵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도 가득하다는 것이다왜냐면  몸을 포함한  우주에 가득  침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이 나는지 도무지  경계선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팎의 분별나와 세상으로 나누던 차별이 침묵 속으로 사라져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마음만이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해탈이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안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승찬 선사 


종교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진정한 부처님은 형상을 가지고   없다.'라는 금강경 가르침을 만나게 되었다
 진리 자체로서의 부처님은 인간의 몸과 같은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가득한 무형상의 깨어 있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의 본성이라서나도 깨닫고 보면 부처님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때문에 부처님이라는 형상을 향해 공경심을 갖고 절을 하지만결국   안과 밖으로 깨어 있는 무형상의 마음 본성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다


언어의 경계 너머에 있는 본성을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한다면  채로 깨어 있는 마음이 참으로 묘하게도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서  우주 전체 가득히 자기 홀로 있다모양을 가진 우주의 만물들이 바로    채로 살아서 홀로 깨어 있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안다 마음은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도 있었고지금도 있고세상으로 모습을 나투지 않았기에 죽어 사라지지도 않는다마치 구름과 천둥비를 수용하는 하늘 공간처럼음악 소리의 배경으로 있는 고요처럼세상의 여러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아이가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처럼 항시 현존한다 우주가  하나(마음 안에  들어와 있을  마음을 벗어나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본성을 깨쳐  번째 단계인 초지에만 들어도 웬만한 경전이나 어록을 보면  아는 지혜가 구족됩니다하지만 아홉 계단을  가서 십지까지 이르러야 되는 이유는 본인이 깨친 바와 평상시 행동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부처 소리를 들으려면 마음 성품을   정도 가지고는  되고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일반 저잣거리 사람들이 '당신은 참으로 부처님 같소.'라고 이야기해줄 비로소 저잣거리 사람들의 말에 의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은 후에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격을 닦아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필요한 지식도 또한 열심히 배워서 
방편으로   줄도 알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그래서 완성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정말로 깨달은 스승은 자기만을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말고 좋은 스승이 있으면 거기에도 가서 배우라고 합니다
제자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본인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자를 소유물같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신과 같이 숭배되어 권위로써 사람들을 누르려 한다면 
스승에 대한 고마움은 가지되  상처 받기 전에 
 조직에서 나오세요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혜광 스님 


마음이  때면 문득  떠오르고 바람 불어오니
 세상 반드시 고해는 아니네

-채근담 

2017 10 28 토요일 

청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