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야하고
1:1 나눔의 대화가 있어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형성되어진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나와 일심동체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이고 믿음이고 은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은혜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소망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구원이란?
상극과 상생할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하고
상생과 상극의 경계를 뛰어넘을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깨달음의 세계에 진입했음을 일컬음과 동시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에 첫발을 들여놓은 표식임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믿음위에 세워진 기도이자
공동체 예배를 위한 배려로 인해 시작되어지고 있다.
이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거나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예약을 해놓은 것처럼
곡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그 모든 죄를 면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야말로 시작이자 끝을 향해 달려가는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한 후 구원을 받았다하여
그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대열에 서있을 뿐
또 다른 조건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들이
줄지어 서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하여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듯이
구원을 받았다하여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과 같다.
다만 삼위일체와 함께하거나
날마다 부모님께 안부를 묻듯이
하나님과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소통과 우주적인 통로를 통해
하나님과 자주 만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을 해보아라!
너도 나도 세례를 받았다하여 그 모든 것을 다 용서해준다면
그 누가 종교에 의지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극복해내야 하는 인내심에 한계가 있듯이
종교 또한 인간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건 또 다른 신이건
인간의 상향적인 욕망을 채워줄 그 어떠한 신도
이 우주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하나가되어질 때
믿음과 구원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듯이
지금 당장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소통이다.
그리고
호흡하거나
걸을 때나
한 몸으로 움직이고자 노력하는 그 자체가
믿음이 되거나
구원이 되거나
은혜가 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2014년 3월 10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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