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바람이 불때마다(누락)

청아당 2010. 12. 3. 12:39

바람이 불때마다(누락)

 

하늘도 막히고 땅도 막힌

죽음의 그림자가

바람으로 다가와 손짓한다.

수없이 하늘을 날고

수없이 땅을 향해 달렸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피로에 지친 바람뿐이다.

처음부터 출발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모든 것을 수용할 것처럼 말하고 있어 믿고 따랐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가슴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앞에서 당당하기보다는

뒤에서 더 당당한

앞뒤를 구분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사이

땅에서는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하늘을 날아본 사람은

땅에서도 잘 달린다.

만약에 바람이 없었다면

서로에게 안겨줄 선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 구멍이 뚫려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약한 바람이

강한 바람한테 놀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고 있는 은행나무 한그루

겨울이 되기도 전에

옷을 벗고 서있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올해 따라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은

흔들리고 있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이 준 가장 아름다운 푸른 생명체이기에

꽃도

나무도

해마다 겨울을 맞이하며

홀로 서있기를 주장한다.

주고 빼앗는 팽팽한 신경전이지만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겠다는 자연의 약속이 있었기에

산에다 손가락을 걸고

바다와 들판을 향해 바람과 함께 힘껏 달리고 있다.

홀로 죽는 것은 쓸쓸하지만

함께 모여 죽는 죽음은 외롭지가 않다.

서로에게 등을 두드려줄 수 있고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기보다는

넓고 깊은 하늘 끝에서 살기를 소원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 한번 감았다 떠보면

귀밑머리 흰 머리카락이 세월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래도 바람이 있어 다행이다.

영원히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면

하늘도

땅도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 때는 후회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이

자연의 첫 번째 조건이자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의무이다.

그 많던 꽃향기와 푸른 나무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먼지 묻은 옷을 털어내듯

몸 한번 흔들면

아깝다는 생각도 하기 전에

비바람이 불어와 마지막 하나 남은 나뭇잎조차

걷어가 버린다.

보는 것은 아름답지만

만지는 것은 추할 수 있기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낸다.

눈물 없는 이별이다.

슬픔 없는 이별이다.

만나면 헤어져야하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듯이

자연도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꽃과 나무들을 거둬들이며

내년에 또다시 필 봄을 기약하며 떠나간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다.

자연을 붙잡아 장승처럼 서있기를 요구하지만

앞에서 잡으면

뒤로 빠지며

불꽃부터 던져놓는다.

그것은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이다.

언제 식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우리들의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나무들처럼

하늘을 향해 불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함께 죽을 수 있는 바람을

계속해서 불러들이고 있다.

죽음의 끝이 어디인지

삶의 끝이 어디인지

바람을 피해 살 수 있는 꿈의 나라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평안했다고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사선(死線)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어제도 즐거웠고

오늘도 즐거웠었다고

 

2010123일 금요일

 

바람이 불때마다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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