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고궁(古宮)(누락)

청아당 2010. 11. 19. 22:24

고궁(古宮)(누락)

 

발길이 아름다운 것은

그 밑으로 쌓인 세월 때문이다.

 

하루하루 떨어져 내리는 낭만이

앙상한 가지로 남기 전에

늦가을 단풍이 손짓하며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마지막 죽음은

그래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으로 이어지며

길 위를 달리는 것도

바람이 있어 가능한 것처럼

흔들리는 고목과 오랜 세월의 싸움에서

더 이상 흔들릴 수 없다며 애써 중심을 잡고 서있다.

 

창덕궁엔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후원(後苑)이 있다면

창경궁엔 춘당지(春塘池)를 가르며 뛰노는 원앙이 있다.

 

하지만

후원(後苑)은 이미 매진되어

갈 수 없고

예약된 사람들만 걷고 있다.

 

그래도

이방인과 함께 걷는 고궁이 있어 즐겁기만 하다.

 

함께 걷자고 손을 내밀지도 않았는데

디지털카메라를 건네며

셔터를 눌러달라고 부탁한다.

 

아름다움은 말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먼저 아는 법!

 

침묵 속에서

흔들림을 발견하거나

고고한 자태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동안 살아온

느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낙엽을 펴놓고 두 다리를 펴고 잘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은 없지만

낙엽위에 또 다른 낙엽이 쌓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세월이 겹쳐 하나로 보이고 있는 이 현실

알고 보면

수천 년이 달려온 세월이자

수억 년이 달려온 세월이다.

 

수없이 손끝으로 만져봐야 알 수 있는

古宮

깊게 묻힌 세월을

흔들어 깨우지 않는 이상

영원한 신비로 남는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걸었던 추억만 보여주며

처음과 끝의 난간에서

지금도

달이 뜨고

태양이 뜨고 있다며

귀를 빌려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20101114일 일요일

늦가을에 창덕궁과 창경궁을 거닐면서 창경궁 춘당지(春塘池)에서…….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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