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예기치 않은 삶(누락)

청아당 2010. 9. 29. 11:46

예기치 않은 삶(누락)

 

길목이 좋으면 바람도 그 길을 선택한다.

이마를 식혀줄 바람이지만

예기치 않은 태풍으로 돌변하면

거대한 나무들을 통째로 쓰러뜨린다.

분명 수천 수백의 수령을 사수하며 자라온 고목이지만

잠깐 한눈을 팔거나 잠들면

영원한 꿈의 나라로 달려가고 만다.

이미 골다공증에 걸린 나무들이라

수백에서 수천 년 이상을 살아온 저력과 역사를 강조하며

생존해 있더라도

겉보다는 속이 텅 빈 고목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하루하루 지탱해온 발걸음이기에

더는 견딜 수 없다는 핑계로

그리고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며

뿌리째 뽑히거나 힘없이 쓰러져

다시는 그 자리에 서있는 고목을 볼 수가 없다

평소엔 나그네한테 그림자를 내어주며

바람조차 숨죽이며 다니던 길목이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장 추한 모습으로

생사를 넘나들며 돌아올 수 없는 경계에서

자신의 운명을 내던진다.

날마다 태양이 넘어가던 길목이었는데

꿈에서조차 볼 수 없는 수평선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정해진 길은 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비게이션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길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어떤 때는 인천대교 한가운데 바다로 빠져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관령 깊은 산중에 빠져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기도 한다.

술래잡기라도 하고 싶은지

업데이트되지 않은 내비게이션은 찾을 수 없는 길을

포기하고

자동항법장치인 사람들의 직감에 의지하며 달리라고 충고도 해준다.

알 수 없는 길은 내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듯이

아직도 저장되지 않은 정보가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서 잠들고 있다.

길은 분명 길이지만

눈뜨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길을 포용하기에는

가슴의 크기가 작아

자연이 알려 준대로 달려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지금을 사랑하고

과거를 꿈꾸는 사람은

지금을 버리고 있다.

꿈은 꿈일 뿐

현실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다가오는 길목에서 언젠가는 만나야할 운명이기에

눈뜨면 제일먼저 안부부터 물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그 길로 달려올 바람이 달려오지 않는다면

삶의 방향은 틀어질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예기치 않은 일들이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발을

족쇄처럼 묶어놓고 있지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빈틈으로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삶의 지도를 바꾸어가며

우리들 곁에서 버팀목으로 서있다.

 

2010929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