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잃어버린 바람(누락)
숱한 세월을 달려온 바람이
말을 잃어버렸다.
손으로 입을 막고
발로 엉덩이를 쳐대는 바람 때문에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가 없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어렵게 참으로 어렵게
침묵을 흔들어 깨운 나무들이
언제부턴가
또다시 깊은 침묵으로 잠들어버렸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이다.
누구를 싫어한다는 것은
교만이다.
우주를 말하고
세상을 말하는 자유 속에서
마음 놓고 평화를 말하던 시대가 어제였는데
그물로 담을 쌓아 논 바람 때문에
모든 구멍이 막혀버렸다.
웬만해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지만
바람도 그물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자연이 고마울 따름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손발을 묶는 아픔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가고
바른 몸가짐으로 살아온 성자들도
눈을 감아버린 세상이기에
하늘조차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죽음이 두려운가?
삶이 두려운가?
호된 호통 속에서도
삶은 흘러가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숲속에 서면 모든 것이 침묵인데
숲속에 서면 모든 것이 자유인데
무쇠보다 단단한 검으로
심장을 찔러보지만
선홍빛 피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선택한 사람은
죽을 수도 없고
그 어떠한 어려움도 피해가기에
모두가 선택한 길을
함께 걸을 수밖에 없다.
어렵고 힘들어도
세월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천지를 뒤덮는 화약 속에서
함께 뒹굴며
영혼 없는 정신으로 노래나 하자!
우리가 선택할 권리는 하나도 없다.
그저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것!
민초가 살아남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오늘도 하루를 넘기고
내일도 하루를 넘기고
한울타리 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다는 행복 하나로
그리고 밟아도 또다시 일어서는 질긴 생명력으로
땅을 밟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따뜻한 미소로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편안한 미소로 찡긋 웃어주자!
웃는다는 것은 행복이자 즐거움이기에
손을 잡고
가슴으로 달려드는 기쁨을 맞이하자!
모두가 하나라는
하늘의 뜻이 살아있는 한
침묵에서 깨어나 손을 흔들며
하늘의 뜻을 살피자!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말을 잃어버린 바람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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