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집도 팔고
땅도 팔고
자식만 안보면 살 것 같다던 70세의 할머니…
평생을 일하면서
일보다 더 힘든 것이
자식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힘들게 집도 장만하고
땅도 장만하였건만
오히려 짐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하루빨리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한다.
평생을 모은 만큼
버리는 것도
한순간에 버릴 수 없다고 한다.
답답하다고 한다.
다 던져버리고 이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데
죽음보다 더한 인연으로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당장이라도 1억이 넘는 집을 팔아
4명의 자식에게 1천만 원씩 나눠주고
시골 요양원에 가서
남은여생을 살고 싶어 하신다.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죽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에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
불안하다.
혹시라도 5천만 원을 들여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사기를 당한다하더라도
차라리 그것이 나을 정도로
자식과 인연을 끊고 싶어 하신다.
홀가분하게 산다는 것은
걱정 없이 산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돈 때문에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멀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돈 버느라
어렸을 적에 홀로 자라게 한 것이
자식에게 한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틈만 나면
목을 조인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훌훌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은 홀로 놓아두지를 않는다고 한다.
더 깊은 고통으로
더 깊은 상처로
더 악화된 병세로
온몸을 누르고 영혼까지 짓누르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인줄은 알겠지만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 한이
하나 둘
가슴에 쌓인다고 한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바람처럼
허공처럼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얼마큼 더 달려야하는지
얼마큼 더 움직여야하는지
얼마큼 더 고통을 느껴야하는지
더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이 붙어있는 동안
끝없이 나있는 길을 걸으며
그렇게 고통의 깊이를 맛보며
살아가야하는지도 모른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너무나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 뒤로 달릴 수도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은
자신이 걸어야만 해결되는 일이기에
앞만 보며 달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함께 사는 딸에게
시골 언니 집에 내려간다 말해놓고
오늘밤은 찜질방에 가서 자야겠다고 말하겠는가?
그 누가 말했던가?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주고받으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래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며 달려보자!
달리다보면
거치적거리던 것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겠지만
피보다 진한 혈육의 끈만큼은
죽어서조차
떨어지지 못하고
팔뚝에 매달릴 줄도 모른다.
가슴에 쌓인 한을
아니 온몸으로 쌓아온 한을
토해낼 데가 필요하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동해바다로 달려가
울음을 터뜨리며
죽음보다 더한 침묵을 손에 들고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보자!
죽기보다 더한 삶이 있겠는가?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은
기쁨을 알고
슬픔을 알고
즐거움을 알 수 있는 길이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앞만 보며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면서
조금씩 발걸음을 떼어놓으면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삶의 의미를 되새겨줄 것이다.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줄지도 모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려움을 피하는 순간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바다에 빠져죽으려다
뱃사람에 의해 구조된 후
뱃사람이 되어
죽음보다 더 힘든 것이 뱃일이라며
뱃일을 포기하고
공사판에 나가 일하다
발을 다쳐 1년 동안 고생하고
이번에는 택시운전을 하다
발을 다쳐 1년 이상 병원생활을 해오는 사람이 있듯이
죽기를 각오한 사람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없다면
앞만 보며 달리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아름답듯이
목숨이 붙어있는 한 행운은 늘 따르는 법이다.
끝없이 달리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보다 낫다는 것일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 속담처럼
아침에 눈뜰 수 있고
저녁에 눈 감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즐거운 것처럼
오늘도
생각하며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행복한 것이다.
2009년 1월 30일 금요일
도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