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적인 이상세계
꿈을 그리는 일은 현실이 힘들고 고달 퍼서일 것이다.
가난하고 천대받다보면
부자를 꿈꾸는 일처럼
막상 부자가 되면 꿈이 없어지는가?
꿈은 꿈을 낳을 뿐이다.
윤회의 고리를 끊고자하지만
어떤 모습이 윤회를 끊는 일인가?
성자들처럼 절제와 검소함으로 평생을 수련하는 모습인가?
아니면 고등교육을 받고 부자로 살거나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시는 고해의 바다인 현생에 태어나지 않는 일인가?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은 것처럼
가난이 대물림되는 한
숱한 생들을 공전해야하는 사람들.
어쩌다 수련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삶으로 부와 명예를 얻은 들
윤회는 계속해서 일어나야하는지도 모른다.
성자들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 삶이
진정으로 윤회를 끊는 방법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의 숱한 생들을 뒤돌아보자.
현재보다는 과거에 사는 일이 더 불편하다.
모든 면에서
생활에 불편을 느꼈기에
필요에 의해 생겨난 각종 종교와 문명의 이기들.
“품격 높은 생활과 격조 높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의 두뇌들로 이루어진 부산물들.
가장 신성시되어진 자연이라는 영역을 침범해나가면서까지
삶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늘어나는 인구를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이 있는가?
그리고 성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는가?
처음부터 어리석은 꿈으로 이루어진 성자들의 생활방식은
소수의 몇몇 사람에게는 훌륭한 지침이 될지는 몰라도
다수의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삶은 경제논리로 이루어져있다.
경제논리를 빼놓고 이상세계를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몽환이요
꿈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존하는 선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세계를
일방적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면
서로가 갈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자명한 일이다.
추종자와 학자들에 의해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완벽하게 꾸며진 성자들의 삶은
하나의 허구요
자기만족에 빠져든 이상주의밖에 안 된다.
사람들은 꿈을 좋아하기에 하나의 지침으로 세워둘 수는 있어도
반드시 그와 똑같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을 해서는 안 된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기 때문이다.
2006년 4월 16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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