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외로운 이들이여 – 깨달음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명체들이
부디
불안, 근심, 걱정, 초조, 시기, 과욕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기를 기도한다.
정당한 노력을 하는 이들에게는
부디
정당함의 보상이 너무 늦지 않게
찾아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선각자들의
선한 기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펼쳐져서 지구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조금의 깨달음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게 되기를 심장을 두고 광활한 우주에 원해본다.”
4월 22일 08:45
“공원 산책과 명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어 적다.
두 번 정도 발뒤꿈치 호흡을 했었는데 오늘은 세 번째로 더 강한 발뒤꿈치 호흡을 했다.
중단전에 있는 심장 하나와 발뒤꿈치에서 숨을 쉬는 심장 하나가 동시에 움직이며 호흡을 강하게 하고 있다.
4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 과정에서 피부기공호흡이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걸음걸음이 새털 같고 하늘을 나는듯하다.
취함도 내침도 없으니 욕심도 두려움도 사라진 자리이다.
선은 행하고 악은 멀리해야 한다.”
깨달음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깨닫고 난 후 무의미하게 깨달음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선을 행해야 한다.
선을 행함에 있어 깨닫고 못 깨닫고는 중요하지 않다.
교만이 겸손을 넘지 못하는 것처럼
선은 그 모든 악을 이기는 가장 큰 무기이기에
악을 행하기보다는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현생에서나 내생에서나 가장 안전한 울타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를 통한 믿음이다.
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회개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절대 신(또는 하나님)에 대한 간절하고도 처절한 믿음을 통해 남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남을 위해 행하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늘을 감동시키고 땅을 감동시키고 우주를 감동시켜야만 된다.
그만큼 철저해야 하고, 그만큼 목표 의식이 확고해야 하고, 그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선이 가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로 모으는 간절한 염원이다. 염원이 있지 않고서는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를 통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우주에 대한 신뢰이다. 우주는 우리들의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어 앞으로 벌어질 일까지 미리 내다보고 있기에 우주에 대한 신뢰는 무한해야 한다.
호흡이 깊어질수록 우주와 직통으로 소통하는 것도 각종 현란한 현상이나 영적 세계까지도 아우러지는 것도 그만큼 우주에 대한 신뢰가 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한 호흡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주에 대한 신비는 캐도 캐도 끝이 없다.
깨닫고 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선은 행하라고 해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는 우주의 흐름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기치 않게 노크하는 에너지가 있다면 흔쾌히 받아들여 그 매듭을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악연과의 인연을 끊고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 흐름은 인생에 있어 일대 전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주가 알아서 사람을 보내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어떤 깨달음을 통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제 만나도 만나게 되어있다. 그만큼 우주의 계획표는 철저하고 세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취함도 내침도 없으니 욕심도 두려움도 사라진 자리이다.”
과정은 중요하다.
고통, 좌절, 슬픔, 눈물, 처절, 욕심 등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우주적인 단어이자
함축된 높은 깨달음의 결정체로 완성된 것이다.
더는 나아갈 데도 없는
더는 물러설 곳도 없는
모든 것이 편안하고 평온함이 가득한 가운데
우주를 끌어당기는 에너지의 힘으로 다가온다.
그 에너지는 영적으로 아름답고
하늘에서 맑고 깨끗한 정화된 에너지로 내려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순수 결정체로 거듭나기도 한다.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만 그 고통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극한의 끝은 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마치 우주를 한 바퀴 돌고 온 후 제자리에 서 있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잡아도 잡히지 않는 텅 빈 허공처럼
놓아도 놓아지지 않는 집착처럼
텅 빈 허공이나 집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지고지순한 비움의 세계에 진입하여 모든 것을 놓는 가운데
스스로 다가오는 텅 빔 그 자체로 다가오기도 한다.
집착을 놓고 싶어서 놓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집착이 사라지며
우주를 포용하듯이 모든 것을 포용하며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펼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실천이라는 단어가 몸에 걸쳐지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된다.
2021년 4월 22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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