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0년대 평창에서 청옥산을 거쳐 청량산 앞에 도착하자 흙먼지가 뽀얗게 가라앉는다.
맑고 고운 바람이 청량산을 감싸고 있다. 바람을 타고 낙동강에 위치한 도산서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2019년 10월 9일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의 흔적이 담겨있는 소수서원을 다녀온 후 들르게 되어 남다르게 감회가 새롭다.
두 번째 방문이다.
소수서원(=백운동서원. 1543년 건립) - 경상북도 영주시
남계서원(1552년 건립) - 경상남도 함양군
옥산서원(1573년 건립) - 경상북도 경주시
도산서원(1574년 건립) - 경상북도 안동시
필암서원(1590년 건립) - 전라남도 장성군
도동서원(1605년 건립) - 대구광역시 달성군
병산서원(1613년 건립) - 경상북도 안동시
무성서원(1615년 건립) - 전라북도 정읍시
돈암서원(1634년 건립) - 충청남도 논산시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은 9곳이다.
하늘은 쾌청하고 햇볕은 따갑다. 전형적인 가을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입구를 통과하여 산길을 따라 걷듯이 걸어가니 낙동강이 한눈에 보이는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 앞에서 문화해설사분께서 안내를 맡고 계신다. 잠시 도산서원에 대해 귀를 기울이니 시사단(試士壇)과 낙동강 수위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 시사단까지 차오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평생 한두 번 볼까 말까 한다고 한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 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서원 입구엔 고목이 활처럼 휘어져 시사단을 바라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리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곳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 뜻이 숭엄하고 장쾌해서이다.
도산서당은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지만 좁고 아늑한 곳이다. 평소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장소이기도 하다. 곳곳에 퇴계 선생의 청렴한 뜻이 배어져 나오는 것 같다.
도산서당 앞에 세워져 있던 금송(金松)은 ‘왜색 논란’으로 인해 2018년 11월 26일 안동시에서 서원 밖으로 옮겨심었고 그 자리엔 매화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다.
퇴계 선생의 유언처럼 “저 매화나무에 물을 줘라”의 취지에도 맞아 커다란 금송보다는 매화나무가 더 적절한 것 같다.
한석봉(韓石峯, 1543~1605)의 글씨가 비뚤게 쓰여진 도산서원 현판이 있는 곳을 방문한 후 퇴계 선생의 유물이 전시되어져 있는 옥진각(玉振閣)에 들러 문화재를 관람하였다.
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 혼상, 혼천의, 양생지법, 매화등, 투호, 청려장, 도산급문제헌록과 초교본, 수신십훈(修身十訓), 퇴계 선생의 교육관, 성학십도, 퇴계 선생과 율곡 선생과의 관계, 도의철학과 실천, 퇴계 선생의 철학(주리론과 사단칠정), 성리학의 발달 등으로 인해 더 풍부한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혼상과 혼천의의 원본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복제품이 전시 중이다.
“원래 전시되어 있던 혼상과 혼천의는 오랜 기간 훼손이 심각하고 변형의 우려가 있어 시급한 보존처리와 영구보전을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고 고증으로 복원한 복제품을 전시 중이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도하기 위하여 사용하던 기구이다. 복원한 혼상은 조선 시대 천문지도인 국보 제28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나온 1천 467개 별자리를 그대로 입혔다.”
주리론(主理論)
“주리론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바탕으로 하는 성리학에서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이(理)로 보는 퇴계 선생의 학설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철학이다.
이(理)와 기(氣)가 어디까지나 두 가지이지 한 가지가 아니며, 기는 결코 항상 존재하지 않고 생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이는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기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 법칙이며, 능동성을 가진 이(理)가 발동하여 기(氣)를 주재(主宰)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심성론(心性論)의 주요 논제인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설명함에 있어 심성 내부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선한 본성인 사단은 이(理)가 발동한 것이고,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칠정은 기(氣)가 발동한 것이라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퇴계 선생이 주장한 인생관의 논리적 학설이다. 사단(四端)이란 맹자(孟子)가 실천 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칠정(七情)이란 《예기(禮記)》와 《중용(中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을 말한다.
퇴계 선생은 4단이란 이(理)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칠정이란 기(氣)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작용은 이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과 기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선과 악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인 4단은 이의 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성(人性)에 있어 본연의 성(性)과 기질(氣質)의 성(性)이 다른 것과 같다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다.”
주리론(主理論)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바탕으로 하는 성리학에서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이(理)로 보는 퇴계 선생의 학설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철학이다.
주리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기이원론은 한가지 측면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우주 궁극의 법칙이 존재한다.
이와 기가 구별되어져 있는 것은 맞는 말이다. 기는 이에 의해 무형에서 유형의 형상을 지니기도 하고 또 흩어져 전혀 다른 형상을 지니기도 한다. 하지만 기는 이와 함께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퇴계 선생께서 간과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이는 학문적으로 깊이 궁구하다 보면 놓치게 되는 아쉬운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와 기는 이기이원론처럼 평행선을 달리며 합쳐질 수 없는 수학의 공식과도 같은 원리이지만 기는 이와 함께 한 몸으로 움직여야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에 의해 기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있고 또 흩어지기도 한다.
퇴계 선생께서 염려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전자석의 원리와 같이 전기가 끊어진 상태와 연결된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이와 기는 하나가 아닌 둘로 구분되듯이 바로 이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연결된 순간 기와 이는 하나로 연결돼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된다.
마치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비유할 수 있다. 몸은 정신에 따라 움직이기에 생각에 의해 몸이 활동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경우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예도 있지만 대체로 몸과 정신은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 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기는 생각을 하든 안 하든 늘 우리 주변에 포진된 채 깨워져 있으므로 곧바로 에너지화되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몸 따로 정신 따로 놀다 보면 심신이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과정에서 한곳을 향해 목표를 정하고 있는 집념(執念)과도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호흡수련이 깊어질수록 더욱 섬세하게 느끼는 부분이고 이가 가는 곳에 기가 있고 기가 있는 곳에 이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깊은 세계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호흡수련을 통해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0월의 가을볕은 최절정에 달해 그 뜨거움이 하늘을 찌른다.
시사단을 앞에 두고 배경으로 서 있는 풍성한 고목들의 배열이 없었다면 자칫 지루할뻔했다. 거기에다 휴식공간처럼 명상할 수 있는 긴 의자가 배치돼 있어 전에 누려보지 못했던 멋과 낭만의 가교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엔 퇴계종택(退溪宗宅), 퇴계기념공원을 비롯하여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있고 하계마을 독립운동기념비 옆엔 퇴계 이황 선생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이육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2019년 10월 9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출처 : [도산서원 홈페이지]
(https://www.andong.go.kr/dosanseowon/contents.do?mId=0101000000)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곳,
한국정신문화의 성지 '도산서원'
문화재 : 서원
분류 : 사적 제 170호 (1969. 5. 28)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도산서원은 주교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공간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과 중앙의 전교당(典敎堂)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되어 있다. 동.서로 나누어진 광명실(光明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동.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이다.
동편 도산서당건물을 ‘박약재(博約齋)’와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하는데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중앙의 전교당은 강학공간과 원장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자리하고 있다.
배향공간인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이 있는데 삼문을 경계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부속건물로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직사(上庫直舍)가 있으며 이는 홍의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1970년 설립된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이 있는데,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백과]
도산서원
陶山書院 사적 제170호
문화재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 등재 (2019년)
요약 :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세운 서원. 2019년 7월 6일,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보물 제210호), 향례 때 제수를 두던 전사청,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서재, 장서를 보관하던 광명실·장판각,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 등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도산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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