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위에 화선지를 펼쳐놓다
자연에 뿌려 논 풍광도 좋지만
가슴에 펼쳐 논 화선지 또한
예술적 공감이 뛰어나다
눈 시린 단풍이
금강산을 덮고
설악산을 덮고
지리산을 덮는다
그리곤
계절의 축제로
땅을 깨운 후
하늘을 깨워가며
가을을 흔들고 있다
흔든 만큼 떨어지는 것이
낙엽이자 단풍이지만
움직이면 흔들리고
흔들리면 떨어지는 것이
계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바람이 지나간 후
남는 것은
계절의 예술혼이다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붓끝이 요동치고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벼루도 함께 요동친다
계절 위에 화선지를
펼쳐 놓는 것은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한
하나의 몸짓이자 작품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요구하며
그 끝이 어디인지 묻기도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합치기 위한
우주적인 배려이기에
붓끝이 움직이는 길목에다
화선지를 펼쳐 놓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여백의 미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듯이
손끝과 발끝에서 솟아오르는
모든 힘을
화선지에 쏟아 붓기만 하면 된다
2014년 10월 24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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