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같은 선상에서 움직이고 있다
행복하다고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불행하다고 늘 불행한 것은 아니다. 행복 속에 불행이 노크하고 있고 불행 속에 행복이 노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드린다고 다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있다면 그 무엇인들 뚫고 나가지 못하겠는가?
행복과 불행은 같은 선상에서 움직이고 있다. 좌우로 기울어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저울(천칭)이 그렇고 공존하는 선악이 그렇다. 한쪽으로 기울면 중심을 잡으려는 힘이 작동하고 있기에 행복과 불행은 한쪽으로 기운듯해도 복원력에 의해 또 다른 중심을 잡으려고 한다. 이 얼마나 영리한 중심잡기인가?
놓는다는 것은 오히려 잡는 것이듯이 잡는다는 것은 오히려 놓는 것이듯이 행복과 불행은 손에 손잡고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서도 은혜가 충만한 곳에서도 좋지 않은 기운들이 작용하고 있듯이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커 보이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행복 속에 불행이 있고 불행 속에 행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불행은 행복보다 더 커 보일뿐 행복과 불행은 같은 선상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빈틈을 파고드는 힘이 강할수록 행복과 불행의 척도가 달라질 수 있기에 외부적인 환경과 심리적인 영향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임종을 앞둔 경우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가족들이 견뎌야 할 온전한 인내심이 끝나는 날 두 가지 마음이 작용함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못 다한 불효에 대한 죄책감이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선 온 동네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듯이 중환자일 경우 가족들의 손길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기에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정성을 쏟아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고난과 시련이 줄지어 서 있더라도 마음이 행복하다고 하면 행복한 것이고 마음이 불행하다고 하면 불행한 것처럼 좋은 기운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나쁜 기운이 침범할 수 있음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욕구가 강할수록 불만족으로 연결되어지고 그것이 쌓여 불행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에 어떻게 보면 상향적인 욕구야말로 인간의 불행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상향적인 욕구가 없으면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상향적인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자 삶의 의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만 큰 그림 속에서 행복과 불행의 척도를 판가름한다면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2020년 1월 12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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