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길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청아당 2019. 8. 7. 22:50

길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제 본 그 길이라고해서 오늘도 그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길은 변화를 위해 존재한다.

 

바람이 바람에 의해 새롭게 변화하듯이 길도 길에 의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인생의 뿌리를 흔든다고 모두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천지가 뒤바뀌어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준비를 하고 있기에 길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선 곳에는

시간도 멈출 수가 없고

바람도 멈출 수가 없고

변화도 멈출 수가 없고

죽음조차 내던질 수가 없다.

 

싸워보지 못한 민족은 맹목적으로 굴복하지만 싸워본 민족은 또다시 싸울 준비를 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함부로 바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죽을 때 죽더라도 민초들의 굳건한 힘이 존재하는 한

우리들의 미래는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 한번 강한태풍을 맞이해보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늘 태풍이 도사리고 있는 이 땅이지 않은가?

 

언제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가시방석에 앉아있으면서도 뚝심으로 일으켜 세운 나라가 아니던가?

 

 

변화는 살길을 찾아가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누른다고 눌리면 계속해서 눌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일어서야할 때 일어서지 못하면 그것 또한 통한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밤 산책을 하다 보니 거리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제의 모습들이 아니다. 아니 10년 전, 20년 전의 모습이 아니다.

 

어쩌자고 이렇게 바뀌는가?

 

변화의 바람이 살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뿌리는 흔든다고 흔들리지 않지만 그 기둥은 수없이 무너지며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묘책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현실 속에 있다.

 

 

우주를 꿰뚫고 지나다니는 큰 틀은

한사람이 걸어갈 때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새롭게 재배치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성명학에서는 81개 경우의 수로 운명을 판단하고 있고, 혈액형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판단하고 있고, 사주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이 우주야말로 그 모든 해답이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201987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