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 깊을수록 성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우주만물의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면서
풀 한포기 생명 하나하나에 애착 아닌 애착이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아마도 태아 때의 기억으로 되돌아가
가장 연약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왠지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눈물 나도록 고뇌하며 슬퍼하게 됩니다.
더구나 선과 악의 균형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고
처음부터, 만약에 처음부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인류는 사후세계나 현실세계나 평온함을 유지하며
죄를 짓지 않아도 될 일을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도록
해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손길인 신만이 아는 일입니다.
수련이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신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차피 구조적인 시스템이 이렇게 되어있다면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 현시점에서는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나마 하늘의 뜻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일
이 또한 큰일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이 구조적인 시스템을 뜯어 고치고싶어하는 것이
모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꾸준하게 과학이 발달하고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찾아내어 광대무변한 우주에서부터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들여다보면
우주의 섭리에 대해
신의 섭리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어차피 인간은
고뇌와 고통과 시련이라는 단어에
얽매이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악의 균형이 맞지 않고
더욱 한쪽으로 치닫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더구나 신의 이름하에 악을 다 쓸어버린 후
새로 시작해도 여전히 선과 악의 균형은
다시 맞춰지는 것을 보면
공존하는 선악의 위대함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
고요의 극점과 공존하는 선악입니다.
이것은 인체전자석의 원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또 다른 민폐가 될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지간에
이 돌파구를 뚫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탄생한 것이
고요의 극점과 공존하는 선악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단광기기이기도 합니다.
이 또한 인체전자석의 원리 하에 드러난 간절함이 담긴
과학적 접근법이기도 합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 고난이도의 수련완화 등
우주와 사후세계 그리고 현실세계를 하나로 엮어서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런 장치를 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한 것은 언젠가는 이루어지듯이
이 또한 언젠가는 이루어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궁금해도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명쾌한 답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2019년 2월 4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존하는 선악은 완벽에 가까운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0) | 2019.02.05 |
---|---|
인간은 신에게 반항하게 되어있다 (0) | 2019.02.04 |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0) | 2019.02.04 |
지금 과학이 열심히 파헤치고 있다고 봅니다 (0) | 2019.02.03 |
모세와 오늘의 출애굽12 - 모세의 세 번째 변명 (0) | 2019.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