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선악은 완벽에 가까운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산다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발걸음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하고
손놀림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하고
입으로 짓는 업보까지 생각한다면
완벽에 가까운 삶은 사실상 힘들다고 보아야한다.
정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 것은 아니다.
동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 것은 아니다.
정적으로 존재하든
동적으로 존재하든
이 둘의 조화는 반드시 필요하기에
정적으로만 존재할 수도 없고
동적으로만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선한 것을 말한다고 해서
삶 자체를 선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 그 얼마나 되겠는가?
뒤돌아보면
날마다 업보를 짓고 있기에
반성하며 새로운 다짐을 하듯이
살아있는 한
날마다 업보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면 딱 맞는 말이다.
업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좌우 어느 곳으로 움직이든 간에
공존하는 선악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말로 하는 업보든
행동으로 하는 업보든
움직임 그 자체에 업보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선한 행동과 선한 말만 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기준이나 관점에서 말한 것이고
각도를 틀어서
객관적인 관점이나 기준에서 바라보면
오히려 더 많은 업보를 짊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과 행동이 아무리 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기준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배울 자유라는 것이 있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억압한다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제법이나 관습법으로 잣대를 갖다 대면
자신도 모르게 죄 아닌 죄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함정이 숨겨져 있는가?
조그마한 지구 안에서조차
국제법과 관습법이 다 다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무슨 말과 행동으로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참으로 무모한 주장이자
이상향에 들떠 있는
완벽주의자가 내뱉은 말과 행동으로밖에 이해될 수 없다.
신의 말조차 듣지 않는 인간에게
인간의 말을 듣는 사람 얼마나 되겠는가?
보면 모르겠는가?
유교도 너무 정형화된 틀에 갇혀있고
불교도 너무 정형화된 틀에 갇혀있고
기독교도 너무 정형화된 틀에 갇혀있고
사람을 옭아맬 수 있는 방법들은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지만
영특한 인간들은 그 모든 것들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 사는 곳에서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유교도 얼마나 많은 업보를 지었는가?
불교도 얼마나 많은 업보를 지었는가?
기독교도 얼마나 많은 업보를 지었는가?
모든 종교들이 얼마나 많은 업보를 지었는가?
뒤돌아보면
업보 투성이인데
무슨 수로 업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공존하는 선악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과
하늘의 섭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존하는 선악에 걸려들지 않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혹자는 선악의 크기나 업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말로 주장하거나
행동으로 주장한다하여
본래의 취지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숨통이 조여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방황부터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말로 행하는 업보이다.
삶은 자연스러워한다.
삶은 정형화된 틀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다.
삶만큼 역동적인 것이 없으며
날씨의 변화만큼이나
다양하게 움직이며 살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굳이 정형화된 틀에 짜 맞추듯이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악만을 위해 살아가라는 소리는 아니다.
선한 행동을 통해 많은 것을 쌓아나가되
경직된 삶으로 살지는 말아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면
악한 행동보다는 그래도 선한 행동이 좋은 것처럼
악한 행위보다는 선한 행위를 선호는 것이 더 좋다.
2019년 2월 5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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