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과학이 열심히 파헤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 열반을 이상향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마치 고요의 극점처럼 말입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빈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오직 허락된 자에 한해서 경험할 수 있듯이
열반도 그러한 과정에서 탄생되지 않았나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윤회도 과학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우주알갱이로 분해해서 연결해보면
그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져 있는 것이 맞습니다.
우주 이전에는
태초 이전이라고 하는 가설을 만들어 놓았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태초 이전이라는 말은
우주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을 말하고 있는 거와 같습니다.
거기에서 먼지가 발생하여
전자기장의 연결력에 의해 별이 탄생하고
태양계가 만들어지고 은하계가 만들어지고
그러한 은하계가 2천 억 개가 존재한다는 과학적인 설명이
어떻게 보면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도 눈에 보이는 우주일 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후세계나 우주가
또 다른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보거나 천안통이라는 말로
사후세계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세계를
각자 다 다르게 그려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성경이나 불경이나 기타 다른 경전에서도
다 다른 그림들을 내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현재로서는 우주의 깊이를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도 알기 힘든 과학의 깊이를 그때 당시에 생각해냈다고 한다면
과연 그 깊이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더구나 신의 존재를 말한다면
수천수만 아니 인간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신의 수를 다 센다는 것도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거기에다 하나님 같은 경우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를 다 만들었지만
자신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고 본래부터 존재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성경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
그 이전의 상황은 추측이 가능할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어진 자, 스스로 존재하는 자
그 누구의 입김에도 영향을 입지 않았다면
신 이전의 세계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이 벽을 깨뜨리기 위해서 깊은 명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요의 극점이나
공존하는 선악은 이 벽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우주적인 차원의 안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로운 사고로 파헤쳐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호흡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호흡 속에서 찾아내야할 것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바로 원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과거의 가설들이나
현재의 가설들이나
미래의 가설들을
자신만의 안목으로 파헤쳐 들어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찾아내는 자,
스스로 발견해내는 자,
스스로 개발해내는 자가 되는 것은
명상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보다 우주적인 차원의 안목을 기르기에 이만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2019년 2월 3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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