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왜 태어났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이라고 봅니다.
왜 사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이라고 봅니다.
왜 존재하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이라고 봅니다.
생로병사를 누가 만들었느냐고 묻는 것도 우문이라고 봅니다.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은 쓰일 용도가 있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산다고 한들 그 말은 맞지 않습니다.
존재하기 위해 산다고 한들 그 말은 맞지 않습니다.
왜? 라는 단어는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명쾌한 답변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죽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 또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넓고도 넓은 우주공간 그 어느 곳에 위치해있을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깨달은 사람들이나
사후세계를 다녀온 분들이나
모든 것을 다 종합해보아도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알게 되고
그 영역권에서만 알 수 있는 일이고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들 추측성 발언만 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깨닫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만 깨닫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문학을 공부하고,
과학을 공부하고,
물리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고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이 되었든,
하나님이 되었든,
부처님이 되었든,
우주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아쉽게도 아직은 명쾌한 해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광기기가 필요한 것도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도전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주의 전부는 알지 못하더라도
일부라도 조금씩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깊이 있게 하다보면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답답하시겠지만
생로병사를 왜 만들었는지
탄생과 소멸은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명상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명상이 깊어지면 스스로 체험하게 되고
비록 서로 다른 천국과 지옥이지만
자신만의 경험을 할 수 있기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인도되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참으로 넓고도 넓어
그 넓이를 측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투시를 통해 보이는 세계만 하더라도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볼 수가 있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기도 합니다.
하늘은 장차 큰 사람을 만들기 위해
더 큰 시련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큰 시련을 많이 겪을수록
사람들은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담을
그릇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2018년 8월 5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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