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선택의 신비3 -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려면
텅 빈 인생들
“나는 강철 같은 의지를 갖고 있다.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끔찍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언제나 내 모든 의지를 쏟아 부었다. 그 공포의 순간을 한차례 넘기고 나면 내가 특별하고 성공한 사람임을 깨닫지만, 그런 다음 또 다른 무대에 서면 내가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평범해질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심, 언제나 그 공포가 나를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인다. 나는 이미 대단한 사람이 되었건만 여전히 나는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런 나의 투쟁은 끝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마돈나 -
“엘 샤다이는 인간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삶을 만드시는 하나님”
- 한소망 교회 류영모 목사 -
“고난의 이유를 하나님 안에서 찾는 사람은 특별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회복을 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이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주신 이가 여호와이시기에, 이 모든 것의 회복도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었습니다.“
- 조영민 목사 『룻기 강해』
“인간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깨진 항아리를 채울 수 있다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교만이다.
깨진 항아리가 강물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가득 채워지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큰 물 안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이사야 55:7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텅 빈 인생들을 바라보며
결국에는 여호와께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가느니
처음부터 제자리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인간의 속성상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야 깨달을 수 있기에
반드시 그 모든 고통과 불행을 맛본 다음에야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얼마나 슬픈 상황인가?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담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그러니
그 누구를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것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고자
마지막으로 내뱉는
처절한 단말마와도 같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0) | 2017.11.28 |
---|---|
궁하면 통한다 (0) | 2017.11.27 |
천둥과 번개 그리고 우박과 폭우 (0) | 2017.11.25 |
가맹점마다 맛이 다 다르다 (0) | 2017.11.24 |
여진 속에서 치러진 수능시험 (0) | 2017.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