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강 엄용식 화백님의 소천(所天) -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5-4)
그러고 보니
친화력도 친화력이지만
아버님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내공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술과 담배를 즐기셨지만
먼저 당신을 낮춘 후
상대방에게 편안함과 부드러움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겸손의 기본기가 몸에 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을 나온 후
젊어서는
경찰관으로 근무하셨고
공무원으로 근무하셨고
기자로 근무하셨고
국회의원 출마까지 해보셨고
각종 사업을 해보셨으며
40대 초반이자 인생전반에서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마지막 직업인
한국화(산수화, 인물화, 풍속도, 신선도, 용과 호랑이, 학, 십장생 등) 작품에 몰두하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로 활동하셨다.
특히 인천에서
소강(小岡) 부달선 서예가(《小岡漢詩選集》1981. 4. 15. 발행)와 친분을 유지하며
예술인과 함께 했었고 한․중․일 예술인과 국제교류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인천시장, 한전 지사장, 경찰서장, 라이온스 클럽 회원, 향우회,
변호사, 법무사, 사무장, 의사, 학교장, 약사, 시청직원,
가천 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재)가천문화재단 이사장 및
다양한 인맥을 통해
예술 활동을 하셨으며
인사동과 깊은 인연을 맺기도 하셨다.
병원에 계실 때엔
병원에서 예배를 올려주셨고
소천하신 후에는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올려주셨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슬픔 속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듯이
즐거움 속에서도
슬픔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뒤늦은 이야기이지만
병원에서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사망선고를 하려고하자 잠시 말렸다.
평소에 아들보다는 딸들을 더 생각하는 아버님이시기에
딸들이 곧 도착하니 잠시만 지연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딸들이 달려와 오열하며
마지막으로 아버님의 손을 잡은 후에야
비로소 심장이 멎은 후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臨終)하셨다.
오감 중에서 가장 늦게 닫히는 게 청각이라고 한다.
그것도 사망 선언 후 36시간을 들을 수 있다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가장 수고가 많은 사람은
큰딸 남편과 작은 딸 남편,
큰조카 및 작은 조카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동생 또한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였고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조의를 표해주신
조문객을 비롯하여
친인척 및 사돈어른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물론 가장 큰 공로는
담임목사님과 부목사, 장로, 권사, 집사님 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는
온 우주와 땅을 뒤덮었고
남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떠나셨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시는 고통이 없는
평온한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사색과 명상의 세계에서 영면하셨다는 사실은
이보다 더 행복한 즐거움은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주고 떠나신 것이다.
2016년 2월 8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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