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춘강 엄용식 화백님의 소천(所天) - ‘영면’(5-5)

청아당 2016. 2. 16. 11:10

춘강 엄용식 화백님의 소천(所天) - ‘영면’(5-5)

 

나중에 하는 이야기이지만

병원에 계실 때에

영면에 대해 글을 쓴 후

읽어드렸더니 참 잘 썼다고 말씀해주셨다.

 

잠시

전문을 밝혀보면 아래와 같다.

 

영면(永眠) - 아름다운 이별(2015년 12월 4일) / 청아당 엄 상 호

 

소리 없이 다가오는 고통도 고통이듯이

호흡이 멈추기 전에

눈을 뜨고 말하라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호흡을 멈춘 후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동안

잠들지 못했던 모든 잠까지

잠들 수 있는 것이 죽음이듯이

영면은

아름다운 의식이자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동안

지옥 같은 현실과 고통 속에서

잠들지 못했던 모든 잠까지

영원히 잠들 수 있는 곳이 영면이다

 

그곳에는

삶도 죽음도 없는

가장 편안하고

흔들림이 없는 공간이기에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곳이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진공상태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 누가 고통을 고통이라 했는가

그 누가 행복을 행복이라 했는가

 

삶도 죽음도

모두 다 한 몸이자 한 식구인데

영원히 잠들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자 기쁨인 것을

누가 방해하려 하는가

 

의식이 또렷하고 말까지 할 수 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울화통 같은 화병을 키우는 계기이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게 하며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삶이 멈추거나

죽음이 달려오겠는가

 

서있는 그곳이

바람이고 구름이지 않은가

 

영면은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한 공간이자

죽음이기에

태풍의 눈으로 달려들어도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하늘과 땅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자

진공상태인 영면

 

그곳은 우주를 총괄하는 최고신조차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이자

우리들의 눈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더는 말하지 말자

더는 듣지 말자

더는 귀를 기울이지 말자

 

오고감에 있어

그 누가 우리들을 단죄하겠는가

 

서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산처럼

그렇게 서있다 가면 그만인 것을

 

 

2016년 2월 10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