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遺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신다.
바깥 날씨(체감온도 20˚)가 워낙 춥다보니 포기하신 것 같다.
집안에 무슨 일이 없느냐고 물으신다.
아버님이 아픈 것 말고는
집안은 이상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특히 셋째한테
신변에 이상이 없느냐고 재차 물으신다.
그것도 속이지 말고 제대로 답변을 해달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녀간 후 셋째 동생도 왔었다.
“앞으로 2~3일내에 떠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느낌이 드시느냐고 물어보자
그렇다고 말씀하신다.
점점 몸이 쇠약해지다보니
그런 느낌이 드시는 것 같다.
거기에다
장례치를 때
춥지 않아야 할 텐데 심히 걱정을 하신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의식이 또렷하다.
남들처럼 “재산을 물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곧바로 말씀드렸다.
차라리 재산이 없는 게 더 낫다고 말씀드렸다.
재산 때문에 형제자매지간에 우애가 깨뜨려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재산이 없는 게 더 낫다고 말씀드렸다.
“걷지 못하는 다리 때문에 죽을 수도 있구나!” 하시면서
가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애써 회피하려고 하신다.
다시 말씀드렸다.
고령인데다 연세가 있으셔서
수술도 불가하고
항암치료도 불가하고
방사선 치료도 불가하여
더 큰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꿈속에서조차
지옥에서 헤매고 다닌다고 말씀하시겠는가?
자식 된 도리로써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모든 것은 순리에 따르면 그만이지만
어떤 때는 순리보다는 역리에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 앞에선
돈도 명예도 모두다 필요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면 그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려놓음과 떠남”은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허허로운 우주공간에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미 천수(향년 86세)를 누리신 분한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시겠는가?
지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어머님은 장례식장에 있을 때나 모셔오고
병실에는 오시지 않았으면 하신다.
다시 말하면
좋은 모습은 보여드리고 싶지만
나쁜 모습은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부부만의 애틋한 배려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렇지만 어머님은
날마다 병실에 가고 싶어 하신다.
그것도 몸도 불편하신 분이 앞뒤 가리지 않고
마지막 가시는 길 지켜보시겠다고
날마다 안부를 물으신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드리라고 성화시다.
간다고 다 가는 것은 아니지만
온다고 다 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고감에 있어 불편함만 없다면
좋은 세상이 아니던가?
이왕에 가시는 길
하나님의 따뜻한 품으로 가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먼저 천국에 가셔서 자리를 잡으신 후
어머님이 오시면
따뜻하게 반겨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하시며
오히려 반문하듯 대답을 하신다.
삶과 죽음 앞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저승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이승보다 더 무섭겠는가?
죽음보다 더 질긴 것이 삶이지 않은가?
오고감에 있어
경계가 없거나 편안하면 되지 않겠는가?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차이만 있을 뿐
의미 없이 연장되는 삶보다는
죽음으로 대신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신다.
이제 더는 슬퍼하지 말자!
이제 더는 괴로워하지 말자!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것!
이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마지막 인사이자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24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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