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 남이섬은 오늘이 좋습니다
사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
“남이섬은 오늘이 좋습니다”
가평나루와 남이나루 입구에 새겨져 있다
“섬 위에 수놓아진 아름다운 정원과 숲”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63km 지점에 가랑잎처럼 청평 호수 위에 떠있는 남이섬.
면적 46만 평방미터에 둘레는 약 5km에 이른다.
평상시엔 육지였다가 홍수 땐 섬이 되던 동화나라 노래의 섬 남이섬. 세계인의 꿈나라 나미나라공화국.”
메르스보다 더 강한 것은
남이섬을 찾는 외국인관광객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2명만 마스크를 착용한 채 조용히 움직이고
나머지는 마스크 없이
북한강에 둘러싸인 남이섬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여행을 하다보면 목숨을 건 위험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경고성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참으로 유연하면서도 강한 면모로 다가온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한류의 힘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날이 갈수록
겨울연가로 유명한 남이섬 본래의 모습은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남이나루 선착장 진입로 주변에 안치된
노래마을에 잠들어 있는
남이 장군 묘와 남이 장군 피화시(被禍詩)가 바위에 새겨진 채
남이섬을 굳게 지켜나가고 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後世誰稱大丈夫 뒷날 그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소.
푸른 강물과 푸른 바람이 만나는 선상에서
머리카락을 날리며
유람선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남이나루에 조성된 인어공주 상을 기점으로
별장마을 강변 오솔길을 따라 남이섬을 한걸음씩 내딛으며 걸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방문했던 모습과 새롭게 단장된 문화가 공존하다보니
그 폭이 훨씬 넓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류열풍으로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절제된 개발로 인해 거리가 더욱 깔끔하게 정리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이자
곳곳에 인상 깊은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마치 외국의 한 풍경처럼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하기야
겨울연가로 유명세를 타기 전 남이섬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외국인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 및 볼거리에 대해
고민 아닌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머나먼 타국에서 어렵게 찾아온 손님이다 보니
세심하게 신경써야할 부분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이섬에는
문화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고
축제․전시․공연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문화체험으로는
남이섬공예원, 그림책놀이터, 남이섬환경학교, 녹색가게체험공방이 준비되어져 있고
축제․전시․공연으로는
그림책놀이터, 노래박물관, 세계민족악기전시관, 국제예술교류, 주말공연, 레인보우페스티벌, 남이섬세계책나라축제가 준비되어져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이섬세계책나라’ 앞에 서있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앞도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배용준과 최지우의 동상’이 각종 포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서있다
눈이 즐거우면 마음도 즐겁듯이
많은 관광객들이 동상 앞에서 자세를 취하며 카메라셔터를 정성스럽게 누르고 있다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유람선에서 내리자마자 반갑게 맞이해주는 ‘입춘대길문’을 통과한 후 별장마을 강변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환경농장 연련지, 백풍밀원, 이슬정원 재활용환경정원, 물놀이정원, 창경원, 청풍원, 수재원, 운치원, 행복원, 공예원, 나미나라공화국 기상대, 바이크센터, 전기차, 유니세프나눔열차 선착장역, 유니세프나눔열차 중앙역, 연인의 숲, 헛다리, 정관백련지, 송파은행나무길, 중앙잣나무길, 메타세쿼이아길, 인공적으로 새로 조성된 남이도담삼봉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나미나라공화국 국립호텔 정관루(靜觀樓)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별빛, 달빛, 새벽 물안개와 함께하는 정관루에서의 하룻밤.
남이섬의 밤은 나미나라공화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아름다운 특권입니다.”
더우면 아이스크림을 사서 입에 물며 더위를 식히거나
배고프면 한식당 남문에서 도토리 묵사발을 시켜 온몸을 식히거나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연인들이 가장 즐겨 타는 2인용 자전거를 타고 남이섬을 달리거나
사랑마을 ‘겨울연가 첫 키스 장소’로 옮겨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메르스로 인해 많은 외국인관광객들이 예약을 취소하거나 줄어들고 있지만
그나마 남이섬엔 외국인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드나들고 있다
우리들에게 길이 없으면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주어져있기에
그것은 곧바로 우리들의 길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에 없던 국립호텔인 정관루(靜觀樓)가 새로 생겼고
그로인해 무성한 숲이 우거져있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픈 사람들의 저변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는
호텔정관루가 이에 해당되지 아니하겠는가
만든다는 것은 길을 낸다는 것과 같고
길을 따라 걷고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그 무엇을 원하겠는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바람에 의해 강물이 흔들리는 풍광을 즐기거나
보트를 타고 강물을 흔들어놓는 일 또한
기대해볼만하지 않은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생성소멸을 반복하고 있듯이
거기에다
색다른 세계를 가슴에 새기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사람들만의 소유권이자
우주를 흔들고자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크고 작은 안목으로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야말로
이 땅위에 서있는 보람이 아니겠는가
‘남이섬 할아버지’ 숲이 되다.
‘절대 개발 말라’는
정작 40년 동안 가꾸어온 민병도(90세)옹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배관작업을 하겠다고 땅을 파헤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경로는 세 곳으로 보여 지고 있다
하나는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그 다음은 짚와이어를 타고 강물을 내려다보며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예인선(통선)과 바지선을 이용하여
작업용 차량을 실어 나르는 배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남이섬에는 특이한 현상이 하나 더 있다
남이 장군 묘도 두 군데인데 민병도 선생님의 묘도 두 군데라는 사실이다
“남이섬에 있는 남이 장군 묘는 가묘이고
부인과 함께 쌍분묘로 갖추어져 있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야산에 있는 묘가 진묘이다
그리고 민병도 선생님의 유골을 화장해
절반은 청주 선영에 모시고
나머지 절반은 고인의 손때가 묻은 남이섬 숲에 봉분 없이 안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이섬은 나미나라공화국으로도 불리웁니다.
상상의 즐거움이 가득한 동화 속 꼬마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으로 문화독립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꽃이 섬을 뒤덮고,
여름이면 짙게 드리워진 숲 그늘 아래로 강바람이 불어오는 곳.
가을이면 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리고,
겨울이면 고드름과 눈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는 곳.”
“14만평의 섬 위에 수놓아진 아름다운 정원과 숲.
산책로에서 맞이하는 석양과 새벽은 남이섬이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1965년 한국은행 총재직을 그만두면서 퇴직금 등을 모아 남이섬을 사들였다.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강에 떠있는 반달모양의 섬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육지였다가 청평댐이 완공되면서 섬이 된 이곳에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 잣나무, 전나무, 백자작나무, 능수벗나무 등을 심었다.”
“섬을 사들인 이후 40년 섬 가꾼 수재 민병도(90세)옹 별세로 ‘남이섬 할아버지’ 숲이 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남이 장군 묘(南怡將軍墓)는 남이 장군과 부인이 함께 있는 쌍분묘로,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2.5㎞ 정도 떨어진 남전리 야산에 위치한다. 1973년 7월 10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남이(南怡, 1441~1468)는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의 손자이다. 그는 1457년(세조 3) 16(17)세의 어린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467년 26(27)세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468년 27(28)세에 병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유자광(柳子光)의 무고로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한편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에 있는 남이 장군묘는 가묘이다.
일간경기에 의하면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에게 먹여 없애네, 남아 20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라고 하여 자신의 기개를 읊었는데, `未平國'을 `未得國'으로 고쳐서 역모라고 무고하였다.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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