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과 명상
산책길이나 오솔길을 걸을 때
건강을 위한 걸음은 빨라지지만
명상을 위한 걸음은 느려진다
걷거나
달릴 때
느림의 미학을 느끼거나
명상을 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있지만
저절로
빠르게 걷거나
천천히 걷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눈길을 빼앗기면
발걸음이
빨라지거나 늦어지기에
눈길을 고정시켜 놓으면
움직이지 않거나
보는 순간 명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분명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흔들리거나
멈추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눈을 감게 되면 세월은 천천히 가고
눈을 뜨게 되면 세월은 빠르게 간다
그렇지만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거나
명상을 강조하여도
천천히 움직일 것은 천천히 움직이고
빠르게 움직일 것은 빠르게 움직인다
가라한다고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라한다고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월을
채찍질한다 하여도
지금까지 달려온
세월의 자존심이 버티고 있어
세월한테
함부로 명령할 수가 없다
그리고
세월도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명상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세월한테
함부로 명령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쁘게 살다보면
시간한테 쫓기며 살게 되고
느리게 살다보면
시간이 달려와
품에 안길지도 모르기에
시간을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시대이기도 하다
얼마나 가슴에 맺힌 게 많으면
시간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겠는가
얼마나 발바닥에 땀이 나야
시간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살다보면
이보다도 더 힘든 일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한 번 내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느림의 미학이든
명상에서 얻은 여유로움이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손을 놓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자연이 내린 명령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이 내린 명령이 될 수도 있어
빠르게 달리든
천천히 걷든
결국은
우리들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겠는가
이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 있겠는가
느림의 미학과 명상은
느림을 느림이라 말하지 않고
명상을 명상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그림을 그림이라 말하면 그림이 아니듯이
그림을 그림이라 말하지 않아야
그림으로 보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다시말하면
그림을 그림이라 말하면
그림처럼 그려놓은 것이 되고
그림을 그림이라 말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그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림이라 말하는 것은
그려 논 티가 나는 것이고
그림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그려 논 티가 나지않는
그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은
바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고
명상은
조용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처럼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그런 곳이기에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세상을 향해
우주를 향해
한껏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이야말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이기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한 번 내지 못한 채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임무가 주어질 때까지
또 다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015년 2월 22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과 지옥 (0) | 2015.03.17 |
---|---|
나는 누구인가? (0) | 2015.03.13 |
사람 사는 일은 단순하다 (0) | 2015.02.21 |
본 호흡법과 보조 호흡법에 대한 구분과 필요성 (0) | 2015.02.20 |
수행자의 선택 - 풍부한 자료가 갖춰져 있어도 (0) | 2015.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