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 2014
떠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먼저 떠나버린 한해였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한해였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떠난 사람들처럼
꿈과 희망이 난무하던 한해였다
대박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들한테
현실감 없는 공허한 말들만 오간 한해였다
교수신문 선정 올해의 사자성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한다
빛보다는
어둠이 더 많은 한해이자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한해였다
이보다 더 많은 상처가 또 있었을까
이보다 더 많은 위로가 또 있었을까
빛의 입자와 어둠의 입자가
서로 섞여
알아볼 수 없는 한해였다
빛은 광명과 희망을 불러들이지만
어둠은 공포와 불안감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죽기보다 더 싫은 것이 삶이라고 했던가
한해를 보낸다는 것은 하루를 보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해를 보낸다는 것은 나를 보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해를 보낸다는 것은 우리들을 보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보다 더 처절한 한해가 있었을까
이보다 더 의미 없는 한해가 있었을까
앞으로 달리다 뒤로 넘어진 한해였다
뒤로 달리다 앞으로 넘어진 한해였다
그래도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용기 있는 한해였다
그래도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달릴 수 있었던 꿈으로 가득한 한해였다
죽어도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도전이 가능했고
살아도 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삶의 뿌리를 흔들 수가 있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은 죽는 일과 같았고
이렇게 죽는다는 것은 산다는 일과 같았다
모두 다 눈을 감고 출발한 선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한해였다
또다시 어떤 능력이 부여될지는 몰라도
우리들은 죽음을 선택하기보다는
우리들은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들은 장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세상의 빛과 어둠이
우리들을 떠받들어주어 환호성을 질렀다
이보다 더 감성적이고
이보다 더 원색적인 삶이 있었던가
보고
배우고
경험하며
삶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삶의 지침서를 찾아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눈을 떠야했고
그래서
눈을 감아가며
꿈속에서조차 우주를 향해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반드시 그 꿈이 아니어도 좋은
그런 꿈을 꾸어가며
살아있다는 숨소리만 들려주어도
생의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안정적인 위로가 또 있었던가
이보다 더 안락한 평온함이 또 있었던가
두 다리를 쭉 펴가며
우리들의 발걸음에 역사를 묻혀가며 걷도록
설득하고 있는 자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딛고선 삶이었기에
그리고
삶을 버린 죽음이었기에
또 다른 한해를 보내며
또 다른 한해를 맞이하는
그런 날의 경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는 말할 수 없는 침묵 속에서
한해를 보낸 유익한 시간이었다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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