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1936. 12. 17.(만 77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수자리.
제266대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2013. 3. 13. ~).”
“교황 프란치스코(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1936년 12월 17일 ~ )는 제266대 교황(재위: 2013년 3월 13일 ~ )이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스페인어: Jorge Mario Bergoglio)이다.”
즉위식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미사는 2013년 3월 19일 오전 9시 30분(한국 시간 19일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격식이 없어야한다.
가식이 없어야한다.
진솔해야한다.
어느 시골 할아버지처럼 손자를 대하듯
아이들을 좋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손만 흔들어도 함께 웃어 줄줄 아는 신자들과 시민들이 있고
파격 아닌 파격으로
따뜻한 온정이 가슴에서 식을 줄을 모른다.
바람 따라 가는 곳이 그의 행보이지만
물길 따라 가는 곳이 그의 행보이지만
조용하면서도 굉음과도 같은
우레와 뇌성번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소탈하다는 것!
겸손하다는 것!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고 있다는 것!
그 무엇에도 꺼리지 않는다는 것!
청빈함과 검소함으로 살아온 일생!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아담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
아무나 해낼 수 없는 파격의 미를 좋아한다는 것!
그 무엇보다 소외된 사람들을 챙긴다는 것!
그 무엇보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위로해 줄줄 안다는 것!
늘 우리들에게는 빈자리가 있지만
그 틈새를 파고들어와
위로와
치유와
화해와
용서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더구나 “평화의 전제조건은 용서로 시작되어진다.” 는 말 한마디는
위정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교훈으로 새겨들어야할 것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이동하려는 모습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려는 깊은 뜻이
배려 속에 있기에
그 인품과 성품을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자신을 낮춰도
한없이 높아 보이는 것은
겸손과 미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보는 것이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 보는 것이듯이
교감은 그래서 중요하다.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말할 수가 있고
보아도 보지 않은 것처럼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가려하고
손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흔들려하고 있다.
그곳이 평화이든
그곳이 화해이든
그곳이 악의 축이든
숨결이 살아있는 한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소년들을 향해 “깨어있으라!” 말하고 있다.
‘화해’와 ‘용서’ 를 강조하며
출국하기 전 8월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마지막으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였다.
교황께서 “한국의 방문은 하느님의 선물” 이라고 말한 후
4박 5일(2014년 8월 14일 ~ 8월 18일) 동안 한국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오후 1시 대한항공 보잉 777 비행기를 통해 이탈리아를 향해 출국하였다.
한국을 떠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위터에 남긴 이야기이다.
“한국의 친구들이여,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저는 곧 아시아에 다시 올 것입니다.”
머니위크 한영훈 기자에 의하면
교황 출국, 마지막 미사에서 남긴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명동성당 미사를 끝으로 4박 5일간의 방한일정을 마무리하고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출국 전 마지막 미사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다.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오늘의 미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라고 강조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1936. 12. 17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제266대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2013~)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남아메리카 출신, 남반구 출신, 예수회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이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이름으로는 처음인데, 콘클라베에서 교황 선출이 확정되었을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생각나 그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으로, 주교, 추기경 시절 소박하고 청빈하게 살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또한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에는 직접 정권에 맞서지는 않았지만, 수 십 명의 반정부 인사들의 해외도피를 도왔다.
성향은 온건보수로 분류되지만, 해방신학, 콘돔 사용, 미혼모 자녀 세례 허용, 동성애 등 꽤 많은 부분에서 개방적인 의견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일 방한하여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를 시복하고 대전교구에서 개최하는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참석한다. 교황 방한은 요한바오로 2세의 2번 방문한 후 3번째이고, 25년만이다.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교황 프란치스코(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1936년 12월 17일 ~ )는 제266대 교황(재위: 2013년 3월 13일 ~ )이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스페인어: Jorge Mario Bergoglio)이다.
즉위식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미사는 2013년 3월 19일 오전 9시 30분(한국 시간 19일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경기매일과 도민일보에 의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일(목) 방한하여 8월 18일(월)까지
4박 5일 동안 머물면서 각종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8월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후 청와대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교황은 “아시아 청년대회와 같이 젊은이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는 청년들의 희망과 관심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언급하며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바 있다고 한다.
8월 15일 오후 한국 천주교의 요람 솔뫼성지를 방문하고
8월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를 100만여 명이 참석한 광화문에서 시복미사하고
8월 17일 대전교구에서 개최하는
제6회 천주교 아시아 청소년대회(6,500여 명) 폐막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을 찾아 입장하며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교황이 직접 참가한 것은 역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호진 세월호 유가족 도보순례단 중의 한명인 이호진씨가 교황에게 세례를 받고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린 세례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 도보순례단’이 메고 다니던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 직전 제의실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이 십자가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지난달 8일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팽목항을 거쳐 14일 대전까지 800㎞를 걷는 동안 함께했다. 노란 리본을 매단 십자가는 길이 130㎝, 무게 5㎝로 나무로 제작됐다.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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