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자비(慈悲)

청아당 2014. 8. 16. 22:29

자비(慈悲)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한 사랑과 관심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달려와 줄 수 있는 신이 필요하고

기쁘고 즐거울 때

신의 손길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필요하다.

 

행동은 실천을 낳고

실천은 이론을 낳는다.

우주적인 포용력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왕성한 활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삶 그 자체에 녹아있는

신인합일체이자

모두가 하나 되어 움직이는 화합이 필요한 것이다.

 

치유와 화해가 필요하고

끊임없는 격려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의식주의 풍족함이다.

고상하고 요원한 우주적인 진리보다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가슴 벅찬 희열과 무한한 우주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언제 하늘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원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언제 하늘의 뜻에 거스르며 살아왔었던가?

 

늘 하늘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고

홀로 독불장군처럼 살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뒤돌아보면

그 누구도 하늘의 뜻을 어겨가면서까지 살았던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자비!

자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행동반경이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 있으면 그 모든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가 않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숙이는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다.

숙이라고 숙여지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숙여지는 자세라야 자비로운 사람이다.

 

자비를 말하면 불교와 기독교를 떠올릴 것이다.

자비는 말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여야하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한다.

자비는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분명하게 구분되어져 있다.

하지만 그 끝에 이르러서는

한 몸으로 이루어져야하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하나로 귀결되어져야한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그물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바람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자비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듣지 않아도 스스로 듣고 있다는 것!

보지 않아도 스스로 보고 있다는 것!

너와 내가 하나 되어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것!

이보다 더 명료하고

이보다 더 선명한 뜻이 있겠는가?

 

자비란?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칼끝에 서있는 것보다는

죄악과 용서위에 서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속적인 자비부터 시작하여

우주적인 자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다.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