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잘 통하는 길목에서 - 시지프스의 신화
청량산을 오르다보면
바람이 잘 통하는 길목이 있다.
경인송신탑 전망대에 오르는 길목에 있을 수 있고
용학유정에 오르는 길목에 있을 수 있고
배전망대에 오르는 길목에 있을 수 있다.
경인송신탑 전망대에 오르는 곳에서
부모와 자식이 화음이라도 맞추듯
아, 좋다! 를 연달아 감탄하며
시선은 인천대교와 송도신도시로 고정시키고 있다.
용학유정에 오르는 곳에선
중년의 부부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가파른 곳에 세워진 배전망대에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으로 말한 후
눈으로 귀를 닫는다.
바람이 통하는 곳엔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삶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삶은 죽지 못해 살기에
고통을 받을 만큼 받은 다음에야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고
죽음은 삶의 끈이 끊어진 다음에야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으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살고 싶을 때 살 수 있으면
그것은 삶이 아니다.
모두가 뜻한 데로 살다가
뜻한 데로 간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늘의 뜻은 늘 그렇듯이
단 한시도 그냥 놓아두는 법이 없다.
그 연약한 나뭇잎조차
바람으로 단련시키고 있듯이
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때까진
《시지프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인
시지프스처럼
신들의 명령에 불복종한 대가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산 아래에서 정상을 향해 밀고 올라가야만 한다.
그것도 끊임없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
바위덩어리를 밀고 올라가야만 한다.
알베르 까뮈의 말처럼
시지프스는 늘 움직이고 있다. 바위는 또 다시 굴러 떨어진다.
나는 시지프스를 산기슭에 남겨 둔다!
인간은 언제나 반복하여 거듭 자신의 무거운 짐을 발견하고 있다.
정상을 향한 투쟁,
다만 이것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한 것이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그의 바위는 그의 소유물인 것이다.
… 그리고 바위는 정상에서 또 다시 밑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그만큼 삶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연결되어져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죽음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연결되어져있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바람이 잘 통하는 통로에 서있거나
바람이 잘 통하는 길목에 서있어야 한다.
아무리 힘든 삶이 자신의 등을 누르고 있더라도
잠깐이지만 행복한 자신을 발견해야하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6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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