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 우주의 뿌리를 찾아서 - 20140611

청아당 2014. 6. 8. 19:44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 우주의 뿌리를 찾아서

 

주승중 담임목사께서 설교하신

2014년 6월 8일 일요일 낮 예배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자합니다.

필자의 입장에서 정리하다보니

아래의 내용에서 설교하신 내용과 다를 수 있으며

그 뜻 또한 왜곡되어지거나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현상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려면

우주의 뿌리부터 흔들어야합니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우주의 뿌리를 흔들어야합니다.

그래야만 허공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깨우거나 발견할 수가 있고

눈에 보이는 존재들을 통해 각성한 후 우주 전체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간다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온다고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오고감에 있어

인연 때문에 오는 것도 있고

하늘의 뜻 때문에 가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우주를 아는 일이기에

그 깊이는 고요의 극점에 도달하는 것과 같고

그 넓이는 팽창하는 우주의 빅뱅과 같습니다.

한없이 넓고 깊으며

그 높이는 가없는 끝과 같습니다.

 

 

성령은 불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성령은 우주에너지와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불과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과

손에 잡히지 않는 우주에너지가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불과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과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에너지가 있습니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손이나 눈으로 잡으려하기 때문입니다.

 

불은 손으로 만져볼 수 없으며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습니다.

바람은 손으로 만져볼 수 없으며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습니다.

우주에너지는 손으로 만져볼 수 없으며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심안(心眼)을 통해

그 느낌만큼은 느낄 수 있기에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하여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은 불인데 타지 않는 불이요

바람은 바람인데 불지 않는 바람이요

우주에너지는 에너지인데 보이지 않는 우주에너지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느낌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요

심안(心眼)을 통해

영적능력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말한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다고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낌 하나만 있으면

그 무엇인들 느끼지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느낌 그 자체는

영적능력을 강화시켜주는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로 활활 타오를 수도 있고

그것은 성령의 바람으로 불어올 수도 있고

그것은 성령의 우주에너지로 온 우주를 밝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불로 비유되기도 하고

성령은 바람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성령은 우주에너지로 비유되기도 하고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로 비유되기도 하고

성령은 그 모든 존재를

하나로 압축하거나 우주 전체로 표현되어지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성령이 임재해있으며

죽어있는 모든 것에도 성령이 임재해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나 깨나 성령의 존재는

우리들 곁에서

늘 함께 호흡하며 숨 쉬고 있으며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성령에는 치유능력이 있어

소경이 눈을 뜨거나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어 다니거나

휠체어를 박차고 뛰어나가거나

불치병이 낫거나

희귀병이 낫거나

난치병이 낫거나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낫거나

암 투병을 이겨내게 하거나

만성적인 병이나 고질적인 질병을 낫게 하거나

교통사고나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상해를 극복하게 하거나

스트레스를 극복하게 하거나

우울증을 극복하게 하거나

신체의 불균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거나

심리적인 불균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거나

각종 치유능력을 발휘하여 심신을 건강체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성령에는 기적의 능력이 있어

시련을 극복하게 하거나

고난을 극복하게 하거나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좌절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방언을 통해 각국의 언어로 표현되어지거나

헤아릴 수없이 많은 각종 은사의 능력을 부여해 주거나

부도위기의 사업을 정상적으로 가동시켜 주거나

경제를 회복시켜 주거나

물질을 풍요롭게 해주거나

시험을 잘 보게 해주거나

취업이 잘되도록 도움을 주거나

슬픔을 극복하게 해주거나

기쁨을 선사하거나

불운을 행운으로 전환시켜 주거나

행복한 가정을 유지시켜 주거나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대신 맡아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가능을 불가능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이러한 치유능력과 기적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간절함과 지극한 정성으로 인해

하늘을 감동시켜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 붙고 있어

아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조그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감동시켜야만 나타나는

치유능력이나 기적의 능력이 발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주에너지를 대표하는 전자기력을

태양과 지구와 달에

보내 주기도하고 우주 전체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성령이 없는 곳엔 생명도 없으며

성령이 있는 곳엔 생명이 있을 만큼

성령 충만함은 곧 삶을 의미하는 말이자

죽음을 의미하는 말로 표현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뿌리는

성령 충만함에서 시작되어져

성령 충만함에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성령만큼

생동감 있는 생명력이 없을 만큼

성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령이 없는 세상은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흐르고

성령이 있는 세상은

삶과도 같은 역동성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걷는 동안

성령이 임재하고 있으며

우리가 눈을 감고 자거나 살아있다는 사실은

성령이 임재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처럼

성령은 생명을 대표하기도 하고

성령은 죽음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성령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성령은 신들의 집합소이자 우주에너지의 원천이자

변화무쌍한 하나님의 능력을 대표하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만약에 성령의 힘이 없었다면

이 우주 자체가 붕괴되어지거나

혼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정교하게 운행되어지고 있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해나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성령이 있는 곳엔 변화가 있고

성령이 없는 곳엔 변화가 없을 만큼

성령은 온 우주를 감싸고도 모자라

우주이전의 세계와 우주이후의 세계까지 아우르며

생명과 무생물에게 힘이 되어주거나

우주의 질서가

순위에 의해 순차적으로 재배치되어지거나

순위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재배치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감탄할 일입니까?

이보다 더 깊이 있는 과학은 없을 것이고

이보다 더 탁월한 천문은 없을 것이고

이보다 더 지혜로운 배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6월 8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