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인가? 하늘의 뜻인가?
땅에서는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고
하늘에서는 필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만남을
우리들의 잔치로만 끝나게 할 것인가?
정녕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는 신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인연으로 엮어온 불교가 있다면
모든 것을 하늘의 뜻으로 엮어온 기독교가 있다.
인연과 하늘의 뜻은 같은 뜻으로 쓰여 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연은 인연으로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따로 쓰여 온 것인가?
우리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철학도
과학도
문화도 아닌
바로 종교라는 사실이다.
교주마다 자신이 만들어온 철학이 있듯이
사람들 틈에 끼여 기생해온 종교는
보이지 않는 신을 부풀려가며
자신의 입맛대로 신앙심을 높여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종교는 절대 우위에서
한 발짝도 내려오려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있어
땅에서보다는
하늘에서 활동하기를 좋아하고 있으며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을 끼워 넣어 삼위일체를 강조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목숨을 걷어갈 신들의 생각을 채 읽기도 전에
우리들의 목숨을
압박하거나
겁박해가며 달려 들어와
한 치의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리라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듯이
마치 진리처럼 만고불변의 원칙으로 존재하고 있다.
시대마다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 것은 바로 순교이다.
죽음도 불사할 만큼
신도들의 호위 속에서
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보호해야할 신들이
오히려 인간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신들을 보면
참으로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누구를 위한 종교인지
누구를 위한 신인지
누구를 위한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들에게 단지 하나의 신으로 치부당하고 있거나
가상의 신들을 만들어낸 우리들의 정성에 감읍해가며
하늘도 감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리가 폐부를 찌르는
단순한 곳에서 시작되어지고 있듯이
종교 또한
우리들 인간의 손에 의해 시작되어지고 있다.
머리로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으로 받아들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종교인지
누구를 위한 신인지
누구를 위한 뜻인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인구에 회자되어가며 그 명맥만 유지되어간다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겠다는 신들의 합창에
우리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인연은 인연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고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연과 하늘의 뜻이
서로 분리되어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원점에서 만나
우주를 순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인연과 하늘의 뜻은
둘이 아닌
하나에서 시작되어 하나에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6월 1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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