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심방(尋訪) - 김훈 목사

청아당 2014. 6. 2. 23:04

심방(尋訪) - 김훈 목사

 

빙빙 돌아서 가거나

앞질러 달려가더라도

만나야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

 

50여명의 부목사들께서

1년에 한 번씩 지역을 바꿔가며 교구장을 맡고 있다.

2013년엔 위미애 목사께서 4교구장을 맡으셨고

2014년엔 김훈 목사께서 4교구장을 맡으셨다.

새가족 성경공부를 담당했던 김훈 목사이시다.

그리고

토요남성연합예배와 심방까지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고도 무섭다.

 

집집마다 찾아가 신도들과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며

한솥밥 먹는 가족처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기회가 아니기에 더욱 소중한 만남이다.

 

김훈 목사와 3명의 권사 분께서

친히 방문하여 주셨다.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경제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화목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행복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평안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평강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복된 가정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축복과 영광까지 내려주셨다.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나

서로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일이야말로

진실로 기뻐할 일일 것이다.

 

주일마다 명강의를 듣듯

담임목사와 부목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듣다보면

배워야할 점이 참으로 많다.

그 끝과 시작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조차 알지는 못하지만

가슴에 담고

머리에 담고

영혼에 담아두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김훈 목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보다 더 뛰어남을 강조하고 있듯이

태초 이전의 세계가 진공상태라면

태초 이후의 세계는 창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것이든 홀가분한 것은

태초 이전의 세계일 것이다.

 

알고 싶어서

배우고 싶어서

의문을 갖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종교이든 철학이든 과학이든

의문을 갖고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자 호기심이기에

따로 질책 받거나

비난받을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존재이전의 세계에서

더 이상 오가는 일이 없는

우주의 진공상태에 머문다는 것은

이보다 더 명확하고

이보다 더 확실한 신뢰감이 없기에

생명으로 태어나

우주를 순환하는 대신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은 것이다.

이곳에선

사후세계도

현실세계도 존재하지 않기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내면을 흔들고 있지만

그 끝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시작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기위한 노력이기에

듣고 또 듣다보면

공부가 되고

기쁨이 되고

세뇌가 되어

어느 사이 신도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귀를 열어두거나

가슴을 열어두거나

마음을 열어두게 된다.

 

듣는다는 것은 배우는 일이요

배운다는 것은 듣는 것을 뜻하기에

보고

듣고

말하는 사이에

그 모든 것이

한 몸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우주와 지구를 꿰뚫기도 한다.

이렇게

일심동체가 되거나

삼위일체가 되어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목회자와 함께 서있거나

하나님의 자녀인

신도들과 함께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기적이란 단어로 연결되어져

인연을 만들어 내거나

우연과 필연사이에서 행복을 맛보기도 한다.

 

뜻하지 않은 사건들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하나님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싫다고 말할 수도 없고

좋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수천수만 명이 동원되어져

그 길목을 지키고 서있는

하늘의 뜻을 피해간다는 것은

백발보다 세월이

지름길로 먼저 달려가

길목을 지키는 일과 같다할 것이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길에서 길을 묻듯

촘촘하게 짜인 그물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덧없는 이 세상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그 또한 기쁘기에

배우고 또 배우며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평생을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 이곳에서

그 무엇을 찾을 것이며

그 무엇을 즐길 것인가?

그렇지만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멀리서 벗이 찾아오거나

배우고 또 배우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배움에는 따로 정도가 없듯이

알고 싶으면 알기에 힘쓰면 될 것이요

배우고 싶으면 배움에 힘쓰면 될 것이다.

 

우리들이 언제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그저 살면서

느끼면 되는 일이요

죽어서조차

느끼면 되는 일이기에

발걸음 가는 데로

움직이면 될 것이요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배움이란 지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주이전의 세계에서

생명도

무생물도 아닌 허허로운 공간에서

생사를 뛰어넘어

기쁨과 슬픔조차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숨조차 멈춘 채

신들에게 선택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결국 하나를 안다는 것은

하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주의 안팎을 넘나들면서

그 끝과 시작점을 찾아들어가

색과 허공이 없는 곳이자 진공상태인

고요의 극점에 안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에겐

가장 아름다운 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2014531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