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송구영신(2013년 ~ 2014년)

청아당 2013. 12. 31. 20:31

송구영신(2013년 ~ 2014년)

 

우리들에게 언제 선택권이 있었던가?

우리들에게 눈과 귀를 열어놓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우리들에게 입과 후각을 풀어놓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오감을 열어놓거나 풀어놓거나

되돌아오는 것은 늘 한 가지밖에 없었다.

진실을 외치면 거짓으로 되돌아오고

거짓을 외치면 진실로 되돌아오는

희망 아닌 희망으로 마음을 진정시켜왔던 한해이다.

본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도 믿지 않고

진실이 사라지는 한해이기도 하다.

그것도 두 눈을 뻔히 뜨면서 당한 일이기에

그 누구하나

거짓을 거짓이라고 하거나

진실을 진실이라고 하는 이가 없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르쇠나 꼬리달기 그리고 불통으로 점철되었던 침묵의 세계가

온 세상을 덮고도 모자라 우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만약에 우리들의 자화상이 없었다면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피를 말리며 생존해왔던가?

선과 악을 함정으로 빠뜨려놓았던 성자들만큼이나

교묘하게 자리 지키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한해이기도 하다.

바람이 한번 왔다 가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그 누군가가 사라지고 만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내공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본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요

배운다는 것은 보는 것이기에

스스로 깨우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가다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쉬다보면 편할 때도 있지만

우리들의 관심은 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다.

천지가 개벽하는 우주의 역사를 만들어놓았던 조물주조차

더 이상 창조를 꿈꾸지 않고 있지만

조물주의 모습을 닮은 인간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창조의 늪에 빠져

새로운 세계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다.

창조는 시공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나 발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듯이

분명 손에 쥐어진 것 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어지고 있다.

그리웠던 과거의 추억보다도

눈만 뜨면 달려야하는 이 현실이 더 암담하고 처참하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그저 손만 놓고 있다.

숨만 쉬고 있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듯이

한 호흡 속에서 새로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데로 달려가고

구름이 흘러가면 구름이 흐르는 데로 달려가고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종적만 사라진 채

끈과 끈만 연결되어져있을 뿐이다.

그 누가 연결시켜놓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연이 그렇게 만들어놓고

우연이 그렇게 만들어놓고

덫에 걸리면

인연이 되었다가도

우연이 되었다가도

필연으로 엮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참으로 크고 아름다운 일은

걸을 때 편안하게 걷게 해주거나

서있을 때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끈과 끈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손에 의해 연결되어지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엔

영혼이 서로를 그리워하듯이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떠보면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고 길을 떠나버린 사람들

텅 빈 공허감은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한 채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인내하다

또다시 처음자리로 가버리는 사람들

더구나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약도 해놓은 적이 없는데

하늘에서 천사가 부른다고

하늘에서 저승사자가 부른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

가야할 사람이 가면 좋지만

아직도 한창 나이의 사람들이 간다는 것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남는다.

우리가 언제 옷을 달라고 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언제 먹을 것을 달라고 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언제 집을 달라고 한 적이 있는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쉼 없이 앞으로 나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의식주가 해결되어지듯이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생각이 부지런하면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몸이 부지런하면 먹을 것과 잘 것이 해결되어지듯이

비록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몰라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더 달려야만

덫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가 가고

해가 오는 길목에서

손을 흔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뜨거운 태양도 품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고

그것이 바로 내일인 것이다.

아무도 그어놓지 않은 빈 경계선에서

그 누가 소리친다고 돌아볼 사람이 있겠는가?

딱 그만큼만 선 위에서 선율이 흐르며 음악이 들린다면

어제가 있었다고

오늘이 있었다고

그리고 내일이 올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만 가득하게 넘쳐나고 있다.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