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제천 의림지(義林池)

청아당 2013. 8. 7. 13:17

제천 의림지(義林池)

 

의림지 옆으로 흐르는 폭포가 천혜의 절경을 안고

뛰어내리고 있다.

우산을 펼쳐들고 산책하는 의림지의 둘레는 약 1.8km,

수심은 8~13m이다.

나무로 된 산책로와 동굴로 새로 단장한

의림지의 규모와 웅장함이 남다르게 변화되어져 있다.

저절로 발이 움직여지거나

저절로 손이 움직여지거나

저절로 산책로가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눈이 즐겁다는 것이고

그만큼 귀가 즐겁다는 것이고

그만큼 의림지의 물과 폭포수로 온몸을 적시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발 한발 경쾌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과 기쁨을 노래하며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고

흐르는 땀과 정성을 더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아무리 아름답고 행복한 조건을 갖추었더라도

체험학습장인 현지답사를 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향기와 풍광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조합하여 만들어놓은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대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 아닌 저수지 옆에서 폭포수가 흐른다는 것은

지형과 입지적인 천혜의 조건이 아니고서는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곳이기에

폭포수가 흐르는 의림지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층누각에서 바라보는 폭포수와 의림지의 전경은

가히 천하를 다 담아도 모자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의림지를 한 바퀴 돌고 싶으면 발로 걸어도 되고

그것이 힘들다면 오리 배를 타고

연인처럼 조용하면서도 나긋한 자태로

물살을 가르며 한 바퀴 돌면 그것 또한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뜻대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이 바람이지만

한곳에 매어있다고 해서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때 되면 찾아오는 바람이 있듯이

때 되면 찾아오는 강물이 있듯이

때 되면 찾아오는 구름이 있듯이

우리들의 발걸음 또한

구름 따라

바람 따라

강물 따라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가다가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고 싶은 것은 보고야마는 우리들이기에

그 어느 곳에 숨어있든

우리들의 발걸음은 찾아갈 것이다.

한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으로

두 번으로 부족하면

세 번으로

세 번도 부족하면

네 번, 다섯 번으로

마음이 채워질 때까지

발걸음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가고야말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젊음이 있다는 것은 힘과 도전이 있어 좋고

늙음이 있다는 것은 경륜과 여유가 있어 좋은 것처럼

앞뒤 사방으로 눈길이 집중되어지는 까닭이기도하지만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발걸음이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들은 하나에서 태어나

또 다른 하나로 합쳐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둘도 하나요,

셋도 하나요,

백도 하나요,

천도 하나요,

만도 하나요,

자연과 우주도 하나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은

황소처럼

사자처럼

앞만 보며 달리라는 뜻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어려움 또한

덤으로 안고 달려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언제 하루라도 편안하게 달려가 본적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려고 하면

경고성메시지가 날아들고

무조건 앞뒤 분간할 시간도 없이

달려가라는

무언의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지 않던가?

그러나 누구를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 누가 모이라고 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다가와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곳엔

특별한 초대가 있고

편안해지기를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던가?

동정호를 먹물로 적실만큼

선비들의 기개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겠지만

10개의 벼루와 천개의 붓대를 닳아 없어지게 했던

조선의 명필가이자 세계적인 명필가가 있었기에

우리들의 선비정신은 산천초목을 떨게 만들고도 남았으리라.

이 얼마나 기다려온 날들인가?

움직이면 삶도 함께 움직이고

멈추면 삶도 함께 멈추는 이곳이야말로

삶의 현장이자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선비들과 나그네들의 쉼터이자

신선이 내려와 함께 유유자적하며 놀다간 곳이기도 하다.

 

문화재 소개에 의하면

1976. 12. 21. 에 시도 기념물 11호로 지정되었다.

의림지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의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충청도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 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km, 면적은 158,677㎡, 수심은 8~13m이며, 주위에는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가 있다. 제천의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13년 8월 5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