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한 통증
어깨를 단칼에 잘라내고 싶은 통증이 있는가하면
위쪽으로 들 수 없는 어깨통증이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통증의 강도를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욕창으로 인해 통증을 느낄 수 있고
교통사고로 사지의 통증을 느끼거나
머리충격으로 인해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통증은 신경과 연결되어져
팔을 들 수 없을 만큼 오십 견을 일으키거나
요통으로 인한 디스크로 인해
바닥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통증이 있을 수 있고
목 디스크로 인해 양팔과 양손이 마비되어지거나
허리디스크로 인해
한쪽발이나 양쪽 발에 찌르는 듯 한 통증을 느낄 수 있고
골반의 통증으로 인해 평생을 통증과 싸워야하거나
무릎통증으로 인해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지거나
인공관절을 삽입해야하는 통증이 있을 수 있다.
흉통으로 인해 가슴이 터질 것 같거나
당뇨병으로 인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발가락과 다리가 썩어 들어가
통증보다 더 심각한 무통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통증을 들라하면
두통, 치통, 생리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두통과 치통은 참을만하지만
산고의 고통에 해당할 만큼 여성들의 전유물인
강력한 생리통은 어찌해볼 수 없는
여성만이 안고가야 할
운명이자 숙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 따지고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위기능력에 강한 것도
달마다 찾아와 아침인사를 묻는 생리통이야말로
여성을 가장 위대하게 만들거나
삶의 밑바닥에서 견뎌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참는다는 것은 인내와 극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통증을 참아내는 일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사선의 경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모세혈관까지 퍼져있는 신경계통을 얼마큼 흔들어야
죽음보다 더한 통증이 발생하는지는
정밀한 영상촬영과 의사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지만
통증의 크기나 넓이는 함부로 정할 수 없을 만큼
환자만이 느끼는 주관적인 크기로 자리 잡기도 한다.
아마도 통증은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할 화두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각하게 여길 수 있는 신경계통이다 보니
그 누구도 통증을 사전에 차단시키거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통증에 대한 처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통증을 완화시키는 통증주사나 마취를 생각할 수 있지만
한두 번에서 시작하여
1~2년을 맞는다하여 완전하게 치료되지 않기에
통증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만
더욱 뼈저리게 부각되기도 한다.
모두 다 이러한 현상들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직업병과도 긴밀한 관련성이 주어져있어
자고나면 통증과 싸워야하는 환자가 줄지어 생겨나고 있다.
아마도 통증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무리한 작업을 요구하는 직업병에서
발생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직업병과 관련이 되지 않는다 해도
신체구조상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피로물질이 잘 쌓이는
국부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더 크다 할 수 있다.
어떤 때는 강보다 더 크고
어떤 때는 바다보다 더 크고
어떤 때는 지구보다 더 크고
어떤 때는 우주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우리들의 통증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고나면 새로운 통증으로
하루를 맞이하며 살아가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기도하다.
움직여도 통증이 발생하고
멈춰도 통증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노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산고의 고통만큼이나
우리들이 영원히 안고가야 할 질병중의 하나로
인식하며 살아가야할지도 모른다.
물론 통증보다 더 심각한
뇌질환으로 인한 정신적인 통증인
정신적인 고통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통증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면
‘몸에 아픔을 느끼는 증세’ 라는 사전적 해설이 있고
고통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면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 이라는
사전적 해설로 풀이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증이나 고통이라는 단어가
우리주변을 떠나지 않고 악착같이 쫓아다니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뇌의 발달로 인해 고통과 통증의 씨앗이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깊이 있는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통증과 고통의 크기를 비교해본다면
통증은 국부적인 죽음이라 말할 수 있다면
고통은 전체적인 죽음이라 말할 수 있어
통증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야말로
삶의 가장 근원적인 고민이자
삶의 끝자락에서 통한의 통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고민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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