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처음으로 나서는 길
가슴이 들뜬 만큼 발걸음 또한 가볍다.
순수의 미학처럼 처음은 늘 설레게 한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지만
우리가 가지 말아야할 길도 정해져 있다.
하늘이 쳐놓은 울타리를
허락도 없이 넘나들거나
가슴으로 밀어버리며
뛰쳐나오는 행동은 용기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은 경계를 허무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처음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저기 달려오는 바람이 발걸음 밑에서 돌고 있다.
지구를 떠받치고
우주를 떠받치고
사람을 떠받치고 있는 바람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있는 바람만이
처음을 접할 수 있듯이
안개처럼 잡히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허공으로 손을 내민 후 잡히지 않는다고 분개해서도 안 된다.
새벽에 일어나 동녘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처음의 뜻을 가슴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동해의 일출 때문에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서해의 낙조 때문에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보는 순간
느끼는 순간
다가오는 처음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하늘이 간직하고 있는 처음의 뜻이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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