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지 않은 길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도
땅의 울림만 있을 뿐 더는 들리지 않는다.
걸음위에 또 다른 걸음이 있어
바람을 타고 떠난다.
동해에 눌러앉아
노송을 거느리고 있는 경포대를 밟기도 하고
서해에 눌러앉아
청량한 바람을 일으키는 흥륜사 경내를 거닐기도 한다.
걸음은 역사가 되어 또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산과 바다가 어울리는 곳에서 소리를 지른다.
석양이 아름다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일출이 아름다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서있는 그곳이 아름다워 소리를 지른다.
생사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분명하게 선을 긋고 서있고
밟는 곳이 세상이 되는 세상에서
조용히 명상에 잠기기도하고
속도가 빠른 바람소리에 귀를 기우리기도 한다.
얼마나 달려왔던가.
그곳이 궁금해서 달려왔고
그곳이 아름다워서 달려왔고
그곳이 기뻐서 달려왔다.
걷는 곳이 행복하지 않다면
걷고 싶지 않은 길이 될 수도 있고
걷는 곳이 행복하다면
걷고 싶은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명이요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다.
멈춤이 죽음을 불러들인다면
달림은 활기를 불러들인다할 수 있다.
끝내 눈을 감고 달리기도하고
오감으로 달리기도 하고
육감으로 달리기도 한다.
그 끝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곳이라 하더라도
흔쾌히 달릴 수 있는 것은
바람은 소나무 끝에 서서 잠을 청할 수도 있고
벼랑을 떠받치기도 하면서
벼랑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청량산 숲속바위쉼터에서 달려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이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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