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감는 것이 아니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한곳으로 모이는 시간은
겨울이다.
그래 처음부터 눈을 감는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시작된 잘못된 궤도가 정상을 이탈하고 있을 때
알아야했었고
함부로 눈을 감는 것이 아니었다.
눈은 뜨라고 있는 것이고
눈은 감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감아본 사람들은 아는 일이지만
고통으로 얼룩진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살아있을 때 따뜻한 정을 베풀어야하고
발로 뛸 수 없으면
우주로 연결된 선을 잡아당겨서라도
삶의 터전으로 내려놓았어야 했다.
본래부터 있던 자리로 내려놓기가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환자실에서 멀쩡하던 사람이 죽어나가거나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내린 낙엽을 다시 주어 담는 일은
하늘의 힘이 미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자나 깨나 눈은 함부로 감는 것이 아니라
감은 눈을 다시 뜨게 하여
한 호흡으로 묶어놓고 쉴 새 없이 호흡을 불어넣어야만 한다.
눈은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은 뜨는 것이 좋다.
꿈속에서조차 눈을 뜰 수 있는 그런 눈으로 살아가고자한다면
하늘도 포기할 것이다.
다시는 한번 뜬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환자 수술대기실에서 암으로 수술 받은 사람을 기다리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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