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바위 약수터 가는 길
경사진 호불사 입구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쉼터에 앉아 돗자리를 펴놓고 자연풍을 불러들이거나
정자에 앉아 조용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해내는
할머니들의 선문답이 선선한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 와중에 젊은 부녀자들은
커다란 돌림틀인 훌라후프를 허리에 걸친 채 돌리고 있고
쉼터 이곳저곳에 설치해놓은 기구를 이용하여
산바람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비가 오면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계곡물이 있고
계곡과 계곡을 건너도록 조그마한 다리가 놓여있고
청설모와 다람쥐가 숨바꼭질하며 달리는 연습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그림자가 넓게 차지하고 있는 쉼터이자
휴식공간으로 이곳만한 곳이 없을 정도이다.
길은 만들면 생긴다.
그것도 임금님이 걸었던 길을 만들 수도 있고
서민들이 걸었던 길을 만들 수도 있다.
숲 속과 잘 어울리는 통나무로 만든 길이
호불사 입구부터 시작하여 병풍바위 약수터까지
어느 구간은 직선코스로 달리고 있고
어느 구간은 곡선코스로 달리고 있고
어느 구간은 직선과 곡선의 미를 혼합하여 달리고 있다.
혹여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한 등산객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해놓기도 하고
햇볕에 노출되지 않도록 그림자가 생기는 길목을 찾아
통나무로 만든 길을 세워놓기도 했다.
밑에는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도록 통로를 열어놓고
위에는 하늘 볕이 들지 못하도록 통로를 닫아놓고 있다.
그렇다고 바람이 계속해서 불거나
햇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산길을 격조 있게 걷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있다는 것은
자연과의 약속이자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는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한걸음 걸을 때마다 소중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산은 탁한 기운을 물리치고 맑은 기운을 받는 곳이자
발걸음이 경쾌해지도록 도와주는 일이기에
산을 오른다는 것은
건강을 위한 것이자
명상을 위한 것이요
영혼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숲 속에서 소리 내어 우는 산새가 있어 마음이 든든하고
다람쥐랑 함께 뛸 수 있는 기운이 있어
언제든 산을 오를 수가 있고
우리들에겐 하나의 작은 행복이자 기쁨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전에는 없었던 길이 새로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거나
놀라게 한다는 사실은
자연과 우리들의 가슴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음을 의미하고
비밀 아닌 비밀로 통하고 있기도 하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바람이 아니더라도 길이 생겨나고
길이 아니더라도 바람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산과의 약속이자
세월을 잊게 하는 명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산은 산대로 길은 길대로 내버려둔다면
사람이 닿지 않는 산으로 남게 되어
꿈속에서조차 생각하기 싫은 일로 남게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연을 훼손해가면서까지 자연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고
깨어나서도 잊지 못할 일이다.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볍고
오늘따라 마음이 가볍다.
아마도 바람이 없어도 달리는 숲이 있어 그런 것 같다.
2011년 9월 3일 토요일
청량산 병풍바위 약수터에서…….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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