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눈
떠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이 있다.
발걸음 따라 걷기도하고
마음 따라 걷기도하고
바람 따라 걷기도하면서
만나게 되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어떤 때는 세상이 만만해보이기도하고
어떤 때는 세상이 하늘 벽에 막혀 막막할 때도 있다.
운명이란 이름으로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것이 있다면
벽을 허물어서라도 밀고나가는 것이
세상사는 일이듯이
한 번 안 된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10번 이상 뚫고 나갈 용기와 희망만 있다면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 언제 아름다운 길만 놓여 있었던가.
우리에게 언제 행복한 길만 놓여 있었던가.
스스로 찾아가서 얻게 되는 행복이란
발품을 팔아야 발견할 수가 있고
겸손으로 낮추는 가운데 발견되는 것이 행복이기도하다.
아무리 달려도 기품과 명예를 얻기 힘든 사람이 있는가하면
멈춰도 기품과 명예가 딸려 나오는 사람이 있다.
수족은 쉼 없이 움직이기 위해 존재하듯이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행동하는 것이 없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거나
바람 한 점 없는 숲에 갇혀 습한 더위와 싸워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도시에서 찾기보다는
숲에 앉아 찾는 것이 훨씬 더 빠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손안에서 빠져나가거나
번뇌와 고민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리는 숲이야말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자연의 뜻과
운명의 뜻이
한 몸으로 만나야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무한한 자극과 우주적인 상상력이 요구되는 도시보다는
숲에서 발견된 것이어야 더 소중한 값어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도시도 자연의 일부로 뼈대를 세우며 명상에 합류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풍부한 명상거리와 경쾌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걸음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숲에서 이루어지고 있듯이
숲은 세상을 알맞게 바라볼 수 있도록 중용의 지혜를 심어주고
오고감에 장애물이 없도록
바람으로 길을 트게 하기도하고
오감으로 길을 트게 하기도하고
육감으로 우주와 통하게 하기도 한다.
눈만 뜬다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아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숲이다.
숲은 바다가 있어 마음과 통하고
바다는 숲이 있어 귀로 대화할 수 있듯이
아무리 달려도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이 있는가하면
멈춰도 바람소리가 들리는 숲이 있다.
만약에 편안한 마음이 하늘을 향해 달리거든
그곳이야말로 선경이자 즐거움의 안식처이다.
2011년 8월 27일 토요일
청량산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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