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전등사와 함허동천(수정)

청아당 2011. 8. 31. 20:16

전등사와 함허동천(수정)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서면

53개소의 돈대가 국방의 의무처럼 서있는 곳이다.

 

‘1679(숙종 5) 병조판서 김석위(金錫胃)의 건의에 따라

강화에 53개소의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그 명칭과 위치가 그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오두산 통일전망대(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 위치한 관광지)에서 바라보면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한 후

바다로 통하는 강화대교 옆에 자리하고 있는

갑곶돈대를 비롯하여

포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초지진

그리고 덕진진, 광성보, 고려궁지, 강화고인돌, 강화산성이 유명하다.

 

강화산성은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 도읍을 강화로 옮기고 궁궐을 세우면서 13년 동안 쌓은 외성, 내성, 중성 중 강화도 전체 해안가를 요새로 쌓은 성이 외성이고 지금의 강화읍을 감싸고 있는 내성(7122m)이 바로 강화산성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숙종 3년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또한 하늘과 연결된

영험한 마니산과 연개소문이 태어나

무술을 익혔던

고려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려산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금도 연모하고 있다.

 

강화도의 3대 명산중 하나인 고려산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유명하고

백련사와 청련사가 산기운을 받고 있다.

 

특히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을 지나면서부터 강화대교까지 연결되어진

해안도로는

참숯불 갯벌 장어와 민물장어구이가 유명하며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추천할만한 곳이다.

 

조금 여유가 된다면

외포리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석모도에 있는 눈썹바위마애관음좌상이 있는

낙가산 보문사까지 답사를 행하면

그 기쁨이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마애관음좌상

눈썹바위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 밑에 좌정하고 있어

우산이 없어도 사계절을 버틸 수 있는

석모도의 유명한 기도사찰 낙가산 보문사

기도의 효험을 느끼는 신도들과 여행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남해의 금산 보리암과 함께 ‘3대 관음성지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 여수의 향일암을 넣어 ‘4대 관음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서기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사찰 전등사

1600여년의 세월을 지켜낸 한국의 대표적인 천년고찰이다.

 

또한 해발 468m의 높이로 세워놓은

마니산을 배경으로

정족산에 자리 잡은 천혜의 사찰로써

일주문 대신 삼랑성을 통과해야하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삼랑성에 발을 들여 논 후
바람과 함께 걷거나
바위로 눌러 놓은 침묵의 길을 걷거나
삶의 뒤안길에 서있는 고된 길을 지나야만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나만의 길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짙은 안개에 쌓인 운무를 안고
전등사에 오르다보면
신선의 경지가 무엇인지
고요와 적막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는 세계에 들게 한다.

그만큼
천년시찰의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자
말하지 않아도
깨달음을 주는 곳이기에
이보다 더 성스러운 곳이 있겠는가?

사뿐히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솟아나고
고목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향기는
땅을 박차며 뛰쳐나가고 싶은 경지에 이르게 한다.

참으로
넓고

깊고
높은 곳이
천년사찰 전등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보다
더 넓고
이보다

더 깊고
이보다
더 높은 곳이 또 있겠는가?


마니산 정상에 오르기 전
절벽과도 같은 바위에 새겨진 함허동천의 유래를 살펴보면

함허동천이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摩尼山 : 해발 468m) 정수사(淨水寺)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해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를 따서함허동천(涵虛洞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도 기화가 썼다는 함허동천(涵虛洞天)네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함허동천의 색다른 풍속을 하나 소개하자면

야영을 하기 위해 찾아온 피서객들의 행렬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허동천이 새겨진 너럭바위를
상류로 하여
중류와 하류계곡에
텐트를 쳐놓고
가족들이 즐겁게 노는 곳이지만
그보다 먼저 잔뜩 쌓아온 짐들을 챙겨
야영장을 향해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만 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최첨단의 기술들이 발달하고 있지만
여기서만큼은
리어카를 사용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아버지가 리어카를 앞에서 끌면
뒤에선 엄마와 딸이
젖 멎던 힘까지 써가며 밀어야만
계곡에 도착하여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색다른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과거에는
회사에서 단체로
야유회를 즐기는 야영장이었지만
그 용도가 바뀌어
피서객들의 발을 시원하게 해주는
탁족이나
전신목욕을 즐기는 곳으로 바뀌었다.

 

 

세월은 한곳에
오래 서있는 것 같으면서도
구름 따라
바람 따라 바뀌어가는
묘용의 극치로 발전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함허동천에 오르기 전
입구에는
100년을 넘긴
아담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과 예배당을 갖춘
강남교회(1905년에 지어짐)
마을을 지키고 서있어
함허동천 옆에 위치한
정수사와 쌍벽을 이뤄가며
종교 간의 마찰을 피하고 있다.

자연 앞에 서면
모두가 하나이자
서로 다툴 일이 없어지는 건
전등사와 정수사 사이에 위치한
작은 교회이지만
포용력으로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지혜가
밤낮으로 지키고 서있기 때문이다.

 

 

경봉스님이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즐겨 썼던 선서

다로경권(茶爐經卷)이 편액으로 서있고

솟대를 지나 죽림다원이 자리한 곳에는

진한 대추차를 시작으로

향긋한 모과차,

약차 쌍화차,

그윽한 국화차,

아름다운 오미자,

푸른 솔바람이 명상 속에 누워있는 죽림다원을 깨우고 있다.

 

그리고

유배지인

제주도에 있어야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세월도 쉬어간다는

500년 된 은행나무 옆에 자리한

통나무 탁자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진한 대추차 한잔에

더위와 시름을 잊고

나무와 나무사이를 피해

달려온 바람이

고찰의 분위기를

격조 높은 품위로 유지시켜가며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달린다고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춰도 달릴 수 있는 곳이

망중한 중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자연이 내려준 혜택이다.

 

 

전등사 윤장대에 다다르면
허리를 굽혀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는 윤장대(輪藏臺)
혼신의 힘을 다해 돌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번은 여고생들이 단체로 놀러와
윤장대 앞에 서있는데
빨간 셔츠를 입은 여고생이 유난히 인상 깊게 남는다.

사람에게 공덕이 없다면

살아가야할 가치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공덕이다.

 

쌓는다는 것은

허공을 향해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을 쌓는 것과 같다할 수 있다.

 

성을 쌓고

명예를 쌓고

부를 쌓아도

공덕을 이루기 힘든 것이

사람 사는 일이다.

 

태어난 순간
수많은 죄가 등에 업혀있어
살아가는 만큼
죄가 무거워지는
억겁의 죄를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살아가야하듯이
태산처럼 쌓여가는
무거운 죄에 비례해서
그만큼 발걸음 또한 무거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주와 자연과 하나가 되어
허공에 묻히거나
그 어떠한 자극에도 분노를 느끼지 않거나
존재감 자체를 없애버린 후
허허로움으로
우주생성의 근본으로 회귀하거나
티끌조차 범접할 수 없는 무한의 끝에 서서
진공상태로 서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는 길은

우주로 나아가는 길이자

자연으로 나아가는 길이기에

함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것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한걸음이라도 제대로 걷지 못할까 두려워서 이다.

 

얼마나 많은 죄가

발걸음의 무게에 실려 있는지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발 한발 옮겨놓을 때마다

그 죗값을 치르기가 겁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려야 그 죗값이 멈출지

얼마나 멈춰야 그 죗값이 사라질지

침묵조차 죗값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잡아도 죄를 짓는 일이요

놓아도 죄를 짓는 일이요

오고감이 없는

경계에서조차

죄를 짓는 일이기에

그 크고 엄격한 죗값의 크기는

우주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사람에게는

우주적인 죗값을

티끌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차 한 잔에

그 모든 고통과 시련

그리고 명상마저도 없애버릴 수 있기에

바람을 굴려

나그네처럼 우주를 여행하거나

자연의 품에 안겨

끝없는 길을 걷기도 한다.

 

손에 닿지만 않는다면

발에 닿지만 않는다면

산도

바다도

모두가 하나로 묶일 수밖에 없기에

명상으로 달려오는 바람과

참 나로 달려오는 발걸음으로

하나가 되어

침묵보다 더한

고요의 극점으로 회귀하여 버린다면

그 보다 더 경쾌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만하다는 것은

그 모든 죗값을

훌훌 털어버리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소맷자락을 날리며

백우선을 날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이다.

 

이 얼마나 가벼운 발걸음인가?

 

이 얼마나 가벼운 가슴인가?

 

마음한번 먹으면

우주가 나고 내가 우주이니

어느 곳에서 나를 찾을 것인가?

 

처음부터 찾을 것이 없는 허공인 것이다.

 

2011811일 목요일

 

전등사 죽림다원에서 명상과 함께 대추차를 마시며……

 

청아당 엄 상 호

 

 

자료출처 :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1.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전등사(傳燈寺).

2.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은 벌거벗은 여인을 묘사하고 있어, 대웅전 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달아난 여인에 대한 배반감으로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3.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하여 삼랑성(三郞城) 또는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 한다.”

 

 

<연개소문淵蓋蘇文 (?~665) 유적비>에 의하면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 유적비 개국의 성역이자 선사시대의 유적지인 이곳 강화는 천하통일의 큰 뜻을 품었던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의 연고지이다. 향토사 강도지에 따르면 그는 강화도 고려산 기슭에서 태어나 치마대와 오정(五井)에서 무예를 갈고 닦았으며 위엄어린 얼굴에 당당한 풍채는 뭇 사람을 압도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가 출생하였다는 옛 터와 자취가 남아있다.

조선 상고사에 의하면 당을 정벌하고 한 민족의 얼을 드높일 것을 주장한 연개소문은 큰 꿈의 나래를 펼치고자 보장왕을 옹립하고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나라 정치를 바로 잡았다.그때 당태종은 연개소문의 집권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쳐들어오자 고구려는 군()과 민()이 하나가 되어 요수(遼水)와 안시성(安市城)에서 크게 싸워 당()의 함선 4백여 척과 30만 대군을 쳐부수었다. 특히 안시성 싸움에서 당태종은 눈에 화살을 맞고 도망쳤다. 연개소문은 승전의 기세를 몰아 당나라 내륙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가 화북(華北)지방을 정벌하고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영걸(英傑)이었다.”

 

 

다로경권(茶爐經卷) -

부석사의 향기를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의 해설에 의하면 찻물을 끓이는 화로(茶爐)와 경전이 있는, 차와 더불어 향까지 함께하는 곳이라는 격조 높은 이름이다.

 

마니산 정상에 오르기 전

절벽과도 같은 바위에 새겨진 함허동천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니산의 계곡에 자리한 또 다른 멋인 함허동천(잠길, 젖을 함 빌 허 비다 동, , 골짜기 동 하늘 천) 계곡이 있어 한때 고려의 도읍지였던 강화도에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함허동천이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摩尼山 : 해발 468m) 정수사(淨水寺)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해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를 따서함허동천(涵虛洞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도 기화가 썼다는 함허동천(涵虛洞天)네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함허동천은 산과 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함허대사가 이곳을 찾아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히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한다.

인근에 회정선사가 창건하였다는 정수사가 있으며 마니산 정상에는 국조 단군께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쌓은 참성단(塹城壇)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