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서
텅 빈 우주 속에서 찾아내야할 것은
세월이 다니는 길목을 찾아내는 일이다.
길목에 앉아 세월을 잡아끈다는 것은
생명의 순환을 멈추게 하거나
수족을 힘들게 하는 세월을 잡아 앉힌 후
더 이상 다닐 수 없도록
발목을 묶어두기 위한 조치로 보아야한다.
그렇다고 세월 자체를 블랙홀에 가둬놓고
멈추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지는 또 다른 움직임이기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주변에선 질병에 노출되어지거나
사망이라는 진단을 받아내며 주변을 맴돌고 있기에
세월을 잡아두거나 묶어두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하늘이 정해 놓은 시간 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다해놓고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앞만 보며 달리는 사람들이 많기에
생로병사의 장단점을 분석해보거나
생과 사의 경계에 앉아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언제쯤에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세월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경계 없이 달려왔던 세월 앞에서
경계를 허문다고 허물어질 경계가 아니지만
또 다른 생으로 전환되어져가는 하늘 길에서
침묵으로 잠들거나
고요를 흔들어 깨운 후
마음 놓고 모든 것을 놓아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앞으로 달리면 보는 것이지만
뒤로 달리면 멀어지는 것이기에
안팎으로 경계를 허물며
다시는 우주의 품안에 들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다.
삶은 늘 역사 속에서 발버둥 치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고 있지만
가끔씩은 무에서 유를 남기는 우주적인 지혜를 펼치기도 한다.
앞으로 달린다는 것은 그래서 힘든 법이다.
앉아있는 시간보다는 서있는 시간이 많아야하고
서있는 시간보다는 달리는 시간이 많아야하기에
텅 빈 우주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일은
생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야하는
힘든 과정이 가로놓여져있다.
이것은 하나의 담력이자 용기가 없으면
참으로 견뎌내기 힘든 일이다.
길목을 지키거나
길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간섭하며
생사를 논한다는 것은
우주를 논하거나
자연을 논하거나
삶을 논하는 것과 같다.
바람을 피해 얼마나 달려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바람을 향해 힘껏 달려야만 하는 숙명론적 운명론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며
과거에 있었던 삶까지 동원하여
오늘 하루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날로 하루를 마감했으면 한다.
자나 깨나 늘 한곳을 지키는 고목처럼
세월이 비껴가는 그런 날로 마무리했으면 한다.
2011년 9월 5일 월요일
세월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서…….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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