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창덕궁(昌德宮) 후원(後苑)

청아당 2011. 8. 17. 00:58

창덕궁(昌德宮) 후원(後苑)

 

신비의 문은 굳게 닫혀있어야만 신비감을 자아낼 수 있다.

석문(石門)으로 만들어진

늙지 않는 불로문(不老門)에 들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창덕궁 후원에는 눈을 감았던 나무들과 새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고 있다.

얼마큼 달려야하는 것보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다보면 앞뒤가 탁 트인

산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고

우주로 연결된 지구가 보인다.

산책을 위한 걸음은

보폭이 큰 것보다 작은 것이 더 좋고

명상을 위한 걸음은

보폭이 작은 것보다 큰 것이 더 좋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물고기와 물을 비유하여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어수문(魚水門)을 통과하면

그때 당시 학문을 연마하며 왕실도서관 용도로 쓰였던

주합루(宙合樓)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연못을 발판으로 우주를 향해 굳게 자리하고 있다.

그 끝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창의적인 학문과 예술의 전당으로 꽃을 피우며

버선발로 달려 나와 반기는 모습이 좋고

영화당(暎花堂) 앞에는

수령 350년 된 느티나무가 바람보다 더 가볍게

역사를 등에 지고 있는 동안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가 치러지기도 했었다.

역사는 달린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있는 그 순간에도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이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상하좌우를 넘나들며 생겨나는 것이 역사이듯이

눈을 감거나 눈을 뜨거나

우리들 가슴에 파고드는 역사는 살아있는 생물이요

생동하는 생명으로 다가와 꿈이 되고 혼이 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후원을 달려오느라 땀을 흘렸던 이마를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혀가며

눈과 마음에 새겨지는 부용정(芙蓉亭)에서

갈증을 달래기 위해 임금이 즐겨 마셨다는 어정(御井)으로 달려간다.

서로가 손을 잡고 하나로 묶여 달리는 곳

절묘한 화음 속에서 자리하며 서로의 가슴에 혼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조용한 걸음으로 책을 펼치면 세상을 달리다 우주로 향하고

우주의 끝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민족혼이 잠들고 있어 더욱 좋다.

보기 드문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觀覽亭)이 한반도 모양의 연못에 서있고

특이하게도 관람정 현판은 나뭇잎모양에 새겨져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우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 옛날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들이 줄지어 앉아

시상에 잠긴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하고

가슴에 품은 웅지의 꿈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좋다.

한발 한발 후원을 걷다보면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정원의 창덕궁 후원이

우리들을 반기고

세계인들을 반기며 세월 속에 녹아든 고목이 줄지어 서있다.

그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자연과 인공을 넘나들며 배치해놓은 후원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기쁨은

서있는 그 곳에서 터져 나오고 은은하게 신비의 뿌리로 자리 잡으며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걷지 않아도 걷고 있는 하나의 풍경 속에 잠겨

명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걸음보다 가슴이 먼저 열리는 창덕궁 후원엔

지금도 묵언 속에서 명상을 즐기는 숲들로 가득하게 늘어서있다.

 

201189일 화요일

 

서로에게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창덕궁 향나무의 수령은 약 750년 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는 5.9m이다.

향나무의 목재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