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의식주 - 살기 위해서 뛰는 사람들

청아당 2011. 7. 25. 12:04

의식주 - 살기 위해서 뛰는 사람들

 

어느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먹고

입고

자는 일은 하루의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일이다.

가끔씩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생각할 때가 많다.

가끔씩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가 많다.

수많은 꽃들과 수많은 물건들 중에서

막상 우리가 선택해야할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이는 먹기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말하기도하고

어떤 이는 입기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말하기도하고

어떤 이는 자기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조건들이 풍부하게 갖추어지려면

적어도 삶의 현장에서

부지런을 떨며 삶의 질을 높여나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게으른 자는 궁핍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부지런한 자는 풍요롭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가끔씩은 게으른 자가 풍요롭게 사는 경우도 있고

가끔씩은 부지런한 자가 궁핍하게 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운명이라 불리거나 숙명이라 불리어지기도 하는

삶의 뿌리인 사주에 나와 있는 대로

개개인의 인생의 뿌리를 들춰내다보면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운명을 믿는 사람들도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60갑자의 덫에 걸려

한 바퀴씩 돌때마다

행운과 불행이 일정한 궤도를 따라 순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신의 일종인 무속인의 인증되지 않는 예언이나 기복신앙은

체계적인 학문이라 불리어질 수 없지만

동양철학의 백미인 사주와 성명학, 관상학, 손금 등은

이미 학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숱한 삶의 귀퉁이에서

또는 삶의 중앙에서 살피고 있는

삶의 지침서이자 기준서인 삶의 뿌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한 학문으로 통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앞을 보지 않고 앞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은

예지력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사주와 성명학, 관상학, 손금 등은 학문적인 분석력으로

개인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늘도 감탄하고

땅도 감탄할 일이다.

그리고 삶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뿌리가

우주의 공간 깊은 곳에서

삶의 회전반경으로 정해져있다면 이것처럼 무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얼굴도 다르고

손발도 다르고

쌍둥이까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로 다른 성격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이 우주가 넓은 만큼 우리들의 모습도

그만큼 넓어야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동양철학의 깊이는 하늘의 뜻을 살피는 일이자

오랜 세월을 견뎌온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생활철학이자 소중한 경험철학이기도하다.

이 모든 학문은

결국 의식주와 연결되어져있고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다니는 운명과 필연의 고귀한 가치로 통하며

한발 먼저 내밀수도 있고

한발 늦게 내밀수도 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의식주가 필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얼마나 풍요롭게 살아가느냐하는 문제만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계획에 포함되어져있어

바람과 함께 의식주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이보다 더 귀한 해결방법은 없기에

이보다 더 귀한 학문이 없기에

우리들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는 것은

하늘의 뜻이자 자연의 바람으로 통하기도 하고

땅의 뜻이자 우주의 바람으로 통하고 있다.

참으로 깊고도 깊은

의식주를 통한 삶의 뿌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거대한 바위와 같이

그렇게 수억 년을 넘어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려갈 것이다.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의식주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