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보다는 하나가 더 좋은 이유
대기권을 뚫고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손으로도
온몸으로도 막을 수 없는 공허한 뿌리가 난마처럼 얽혀있다.
우주선이 헤엄쳐 다니기에는 불편한 길이지만
그래도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품에 안기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기에
우주는 우리들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되어있다.
만약에 사람들이 지구에 살지 않았더라면
우주는 이름 모를 지구에 대해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지구가 있기에 우주가 있는 것처럼
우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주로 우주를 생각하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소우주라고까지 밝히며
대우주를 소우주인 사람에게 구속시키려하고 있다.
꿈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냉혹하리만치 차가운 것이 우주이다.
얼마나 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깨우쳐 주어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한다.
길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길을 만들지는 않는다.
먼저 자연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고
우주까지 생각하는 것이 우주의 뜻이기에
함부로 길을 만들어
누구나 달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는 이치는 간단한 것 같다.
생로병사의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살며
되돌아갈 때는
빈손과 침묵 그리고 고요한 죽음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허전하고 낭패스러운 일인가.
손에서 놓고
마음에서 놓으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 수가 있고
우주보다 더 큰 혜안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느낀다는 것은
소리보다 더 큰 영감으로 깨어있다는 의미와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
태어나면 길을 따라 걷거나 우주를 향해 달리면 그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다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숱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 또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가 우주를 품고 사는 것처럼
우주도 우리들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 뜻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형과 아우의 관계처럼 손을 맞잡고 우주를 향해 달리면
그것으로 우리들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는 뜻만
가슴에 품고 살면 된다.
서로가 서로를 품을 때 발생하는 것이
한 몸이자 하나로 통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건
수행을 통해 이루어졌건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볼 수만 있다면
하나가 되었다하여 특별한 잔치를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본래부터 하나였고 둘이 모여 하나가 되었기에
잡으면 하나가 되고
놓으면 둘이 될 뿐이다.
처음부터 손을 잡지 않았으면
너와 나를 구분할 필요가 없듯이
본래부터 우주의 뿌리는 하나에서 출발하여
여럿으로 나뉘어졌지만
모아놓으면 또다시 하나가 되기에
우주와 하나가 되지 못한다하여
괴로워하거나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언제든지 만날 수만 있다면 하나이기에
따로 도(道)를 구하거나 깨달음을 얻을 필요도 없어진다.
그냥 본래대로 놓아두면
하나로 합쳤다가
둘로 나눠지거나
둘로 나눠진 것이 하나로 합쳐져
천지가 하나로 합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잡는 것보다는
놓는 것이 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6월 12일 일요일
둘보다는 하나가 더 좋은 이유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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