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천국과 지옥

청아당 2011. 4. 17. 18:14

천국과 지옥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묶으면

천지인(天地人)이 된다.

천지인 사상은 고대 사람들에 의해

형상화되고 학문적으로

체계를 구축해 나가면서 완성되어져왔다.

하늘아래 땅이 있고

땅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표현해내기까지

수천 수억 년을 달려오면서

무수한 착오를 거친 후

인간의 손에 의해

철학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되어지고 있다.

우주는 본래부터 있었고

어떻게 하면

우주와 인간이 하나로 합치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신의 영역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었고

신성한 영역에 대한 경이로움에 대한 예의였으며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기도에 의해 완성되어졌다.

그리고 우주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자연의 법칙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채

오늘도 세월에 의해 그 존재감이 굳어져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비좁은 천지인사이에 끼어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고

자연의 신비함을 존중해가면서

우주의 깊이를 손으로 측정해가면서까지

달려온 바람이 없었다면

생각이 있어도 생각할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없어

오직 영적인 영감에만 의지하며

모든 것을 표현해내려는 어리석음으로 살아갈 뻔 했다.

먼저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주와 종교는 이미 하나로 합치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이루어냈고

인간은 그 사이에서 경계를 잊어버린 채

깊은 명상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고요의 극점을 유지하고 있는

우주의 영역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간직한 채

우주는 종교가 있기에 존재하고

종교는 우주가 있기에 존재하듯이

우주와 종교는

원래부터 하나로 묶여있었다.

천국이라는 곳도

지옥이라는 곳도

우주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듯이

우주의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그 신비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여백으로 존재하며

형이상학적인 종교와 철학을 수용하면서까지

과학적 자료를 실증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느 목사에 의하면

진정으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오늘이라도 직접 죽어봐야 알 수 있다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고 한다.

오로지 그 존재는 신만이 알 수 있고

우주의 빈틈사이에서 존재하는 곳이기에

우주가 열어 논

신비의 문을 함부로 노크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천국은 밤낮 없이 환하게 웃고 있고

지옥은 불의 바다 속에서 슬프게 울고 있는

양면성으로 분리되어져

천국을 강조하고 있는 종교적인 덫에 걸려있기도 하다.

그래도 우주의 본원적 구원체인

우주에너지이자 신의 에너지를 향해 기도하며

우주와 종교가 하나가 되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한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들먹이는 우주는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비좁은 우주가 아니다.

그리고 종교마다 색다른 천국과 지옥의 길을 그려내고 있는

우주의 지도도 아니다.

분명 천국에 갔다 온 사람들도 있었고

분명 지옥에 갔다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종교마다

우주의 지도가 다르게 표현되어져온 것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똑같은 천국과 지옥의 길이지만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의 길과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의 길이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주의 지도가 복잡하게 만들어져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색다른 내용은

같은 기독교인들조차 동서양의 표현방법이 다르듯이

우주의 깊이를 잴 수 없도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라면

기독교인들만의 천국의 길을 안내해줄

우주의 지도가 똑같이 표현되어져야하는데도 불구하고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가 지니고 있는 신비감을 축소시키기에 충분하고

동의할 수 없는

우주의 지도를 어떻게 해석해 나가야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주 속에 숨겨진

종교의 신비를 밝혀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 속에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데

더 의의가 있는 것을 보면

우주와 종교는 상생관계이자 동반자역할에

충실하게 엮어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에

우주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종교가 생겨나지도 않았겠지만

종교가 없었다면 우주에 대한 탐구도 그만큼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천지인 사상을 한 몸에 입고 있는 우주가 있었기에

숱한 종교적 의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교의 신비를 불러들이고 있지만

우주에서 바라보고 있는 우주는

종교조차 흡수하며 신의 영역을 따로 내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천국과 지옥은 지구상에서 존재하기보다는

우주의 끝과 시작점에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우주 속에 존재하고 있는 종교는

태곳적 신비와 연결되어져있어

현실에서조차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과학적인 잣대 속에서 발견되어지기보다는

명상이나 기도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는

천국과 지옥은

우리들 가슴속에서 영원한 안식처로 각인되어지고 있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서 종교의 신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종교의 신비를 캐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귀를 닫고

코를 막아도

우주 속에 숨겨진 종교의 신비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형체가 있어야만

종교로써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형체가 없더라도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고 있는 우주만 있다면

우주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며

종교 속에서 파생되어져가는 우주의 깊이가 더욱 더 깊어져

손으로 느껴지는 종교로

가슴으로 느껴지는 종교로 숨쉬며

사람들의 영적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일인가?

항상 그 끝은 신비로 끝난다 해도

사람이 존재하고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이상

종교의 신비는 영원히 우리 곁을 맴돌 것이며

신의 영역으로 파고들어가

종교가 지닌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주의 진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는

종교의 신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1년 4월 17일 일요일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