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불완전한 인간

청아당 2011. 4. 14. 15:43

불완전한 인간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트린 후

가야할 길이 정해질 때까지

또 다른 길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길속에서

바람이 산을 뚫고 터널을 지나가기도 하고

구름이 바다 밑을 뚫고 해저터널을 지나가기도 한다.

처음부터 달려간 길은 아니었지만

달리다보면 발걸음 뒤로 따라오는

바람이 있을 수 있고

구름이 함께 달려올 수도 있다.

가끔씩 서있는 그 자체로

봄을 맞이하여

화분에 물을 주거나

차 한 잔에 담소를 나누며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의 삶은

2%가 부족한 상태에서

항상 또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갖고 싶은 것을 손아귀에 쥔다고 해서

그 나머지를 모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진취적인 창조물을 요구하며

색다른 상품을 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나아닌 또 다른 나의 분신이

허공을 달리고

하늘을 달리며

우주의 공간 한가운데로 몸을 던져

더 이상 나를 인식할 수 없도록

영원한 잠을 요구하며

거대한 블랙홀을 자극하여

시공의 흐름을 정지시켜버리겠다고

압박을 가해보기도 하지만

움직이는 것보다

서있는 곳에서 멈춰버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날마다 꿈꾸는 곳이 변해버리거나

날마다 찾아다니는 희망이 사라져버린다면

우리들이 버텨내야할 인내심과 하늘을 감동시킬만한

사건들을 찾아내지 못해

그나마 붙어있는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에

완전한 인간으로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완전한 인간을 선택하기보다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을 보더라도

모자란다는 것은

채움을 의미하고

채우지 않고 걷는 것보다

비우면서 채워나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서있기 위해

목숨을 던지기보다

잠시라도 여유를 갖고 손을 흔들며

처음부터

불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이미 모든 것을 경험한 삶의 뚜껑을 열어보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꽉 채워진 가슴으로 살아온 것처럼 보여도

막상 들여다보면

1/1,000

아니 1/1,000,000 보다

더 작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삶의 용량이 큰 것 같지만

하루가 24시간으로 제한되어져있는 것처럼

빛의 속도로 달려도

빛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광활한 우주의 시간을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쉼터인

신들의 공간속에서

인생을 말하고

자연을 말해보지만

소우주를 감싸고 있는

대우주의 품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만큼 우리들의 시선은

자연을 벗어나 우주 속을 달리고있지만

진정으로

인생과 자연의 깊은 곳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보다 못하고

실천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고

생각하는 것은 무심한 것보다 더 못할 수도 있기에

삶속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깨달음의 밭에서

따로 도(道)를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우주의 품에 안긴 채

완전한 인간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1년 4월 14일 목요일

 

불완전한 인간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